블록체인 정책

[블록체인 글로벌 패권경쟁 시작]②美, 암호화폐에 증권법 적용 '체인 제국주의' 재현(?)

김미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2.05 13:22

수정 2018.12.06 15:34

미국, 암호화폐 거래소 및 채굴 시장에서 글로벌 영향력 갖춘 중국과 ‘정면승부’

전 세계 전통금융 산업 영향력 이어가기 위해 ‘디지털 자산’ 제도 불확실성 해소
 
블록체인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 자리를 잡으면서, 세계 주요국 정부도 블록체인 정책의 글로벌 패권을 쥐기 위한 경쟁을 본격 시작하고 있다. 일본과 미국, 홍콩, 프랑스 등 전통적인 '금융강국'들은 앞다퉈 암호화폐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거나 기존 증권법 테두리 안으로 블록체인 산업을 끌어들이고 있다. 세계 주요 국가들이 블록체인 정책의 패권경쟁에 나서는 이유는 자국 기업들이 하루라도 빨리 법규정에 맞는 사업을 개발하고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지난 2일(현지시간) 공동선언문을 통해 "금융시스템에서 부상하는 위험과 취약성을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경우 개입할 것"이라면서, 금융분야 기술발전 위험요소 완화를 위해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기준에 따라 암호화폐를 규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세계 각국 정부는 내년 한 해 동안 자금세탁방지 등 암호화폐 규제 관련 제도 정비에 보다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우리나라는 글로벌 블록체인 산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나라였지만, 블록체인은 중요하지만 암호화폐는 나쁘다는 정부의 방침 때문에 점점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
파이낸셜뉴스 블록포스트는 세계 각국의 암호화폐 정책을 재점검하고, 시급히 바뀌어야 할 우리 정부의 암호화폐 관련 정책방향에 대해 제언한다. <편집자 주>

기축통화(달러) 발권력으로 세계 경제를 좌우했던 미국이 암호화폐를 ‘디지털 자산(Digital Asset)’으로 정의하면서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를 중심으로 가상화폐나 암호자산으로 불렸던 용어를 ‘디지털 자산’으로 통칭하는 한편, 시장 건전성과 투자 안전성 확보를 위해 ‘증권형 토큰(Security Token)’이란 울타리를 설치해 기존 증권법으로 관리·감독하겠다는 방침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미국이 규제 불확실성을 걷어내는 동시에 블록체인·디지털 자산을 금융산업의 한 분야로 끌어들이는 배경에는 중국의 시장 지배력 확대가 있다. 중국 정부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표면적으로 암호화폐 시장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지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중국 업체들은 전 세계 암호화폐 거래소 및 채굴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른바 ‘G2 전쟁’이 디지털 자산 생태계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미국 정부는 최근 암호화폐를 '디지털 자산'으로 규정, 제도권으로 편입시키고 있다.
미국 정부는 최근 암호화폐를 '디지털 자산'으로 규정, 제도권으로 편입시키고 있다.

■ICO에서 STO로…미국發 암호화폐 지각변동
5일 외신 및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 SEC는 최근 발표한 ‘디지털 자산 증권 발행과 거래에 관한 성명’을 비롯해 에어폭스, 파라곤, 크립토 에셋 매니지먼트, 토큰랏, 이더델타 등에 대한 벌금 부과 등 시정조치를 통해 투자계약에 따라 발행 및 거래되는 디지털 자산을 현행법상 ‘증권’으로 규정했다. 디지털 자산인 토큰을 증권으로 등록하고 토큰 발행업체는 물론 투자자문사와 거래소 같은 중개업자도 당국에 정식 등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이 클레이튼 SEC 의장도 최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컨센서스 : 인베스트 2018’에서 “빠른 시일 안에 암호화폐공개(ICO)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것”이라며 “ICO 등 자금을 조달할 때 증권형 토큰으로 간주해 모금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거꾸로 보면 증권법에 따라 등록 등 절차를 따르면 영업을 보장하겠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기존 유틸리티형 토큰 기반 ICO 프로젝트들은 적정 가치와 규제를 기반으로 한 증권형 토큰 발행(STO) 체제로 편입, 증권법을 따르면 사업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란 게 업계 중론이다.

[블록체인 글로벌 패권경쟁 시작]②美, 암호화폐에 증권법 적용 '체인 제국주의' 재현(?)
■디지털 제국주의에 이어 ' 체인 제국주의' 재현(?)
이와함께 기존 ICO 프로젝트 중 대다수는 미국 영토 밖에서 미국 국적이 아닌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자본을 조달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SEC가 탈중앙화 거래소(DEX)인 이더델타를 기존 거래소와 동일선상에서 무허가 영업으로 적발한 것은 기존 중앙형 거래소(CEX) 뿐 아니라 탈중앙화 거래소도 미국인이 거래하고 있다면 SEC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속인주의’에 입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블록체인과 디지털 자산은 인터넷·모바일 서비스처럼 국경의 의미가 없다. 체인파트너스 한대훈 리서치센터장은 "각국은 기존 디지털 제국주의에 대응해 '구글세' 도입 등을 논의하고 있지만 다국적 기업들의 독과점 지위는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있다"며 "초대형 다국적 기업과 전통 금융강자들이 블록체인·디지털 자산 헤게모니를 장악할 경우 이른바 '체인 제국주의'에서 '토큰세'를 운운하는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오하이오주에서는 비트코인으로 세금을 납부하는 일이 추진되고 있다.
미국 오하이오주에서는 비트코인으로 세금을 납부하는 일이 추진되고 있다.

■암호화폐 과세체계도 명확…기관투자자 유입
또한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부과한다’는 과세 부분에 있어서도 미국 입장은 날로 명확해지고 있다. 미국 연방 국세청(IRS)이 암호화폐를 보유 혹은 매매하는 사람들에게 자본이득세 등을 부과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미국 오하이오주에서는 사업자들이 달러 호환 등이 가능한 암호화폐 지갑을 활용해 비트코인으로 세금을 납부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암호화폐 과세의 필요성을 인지하면서도 자칫 제도권 편입 수순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부담 때문에 ‘정책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특히 한국 정부가 블록체인·암호화폐 주무부처를 두기는커녕 업계와의 정책 소통이 막혀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과 달리 미국 SEC는 ‘핀허브(FinHub) 프로젝트’ 등 민관협력 창구를 활발히 운영 중이다.

이처럼 정부의 디지털 자산에 대한 정의와 법·제도가 명확해지면서,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와 골드만삭스 같은 전통 금융기관을 비롯해 장기적 관점의 보수적인 투자로 유명한 예일대학교 기금 등도 암호화폐 펀드 투자계획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특히 최근 클레이튼 SEC 의장이 3자 수탁형태의 암호화폐 보관 및 관리(커스터디, Custody) 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피델리티, 골드만삭스, 코인베이스 등에겐 호재로 분석되고 있다. 이는 곧 그동안 개인 투자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암호화폐 시장에 기관투자자들의 진입이 더욱 가속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아톰릭스컨설팅 황현철 파트너는 “암호화폐 같은 디지털 자산의 안전한 보관과 관리에 대한 커스터디 서비스는 건전한 디지털 자산 시장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인프라”라며 “커스터디를 포함한 크립토 자산 관련 비즈니스를 위해선 블록체인 기술뿐 아니라 전통금융 산업의 구조에 대한 이해와 경험을 비롯해 규제환경의 진화 방향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likim@fnnews.com 김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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