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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칼럼] 하구의 숨통이 다시 트일 때까지

이병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2.16 17:04

수정 2018.12.16 17:04

[차관칼럼] 하구의 숨통이 다시 트일 때까지

"재첩국 사이소~." 이 소리는 지금부터 30여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낙동강 하구 주변 동네의 아침을 깨우는 소리였다. 낙동강 하구에는 재첩이 많이 나, 이를 잡아 생계를 이어나간 사람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가 본격화되면서 낙동강 수질 악화와 함께 해마다 재첩의 수가 줄어들었고, 1987년 하굿둑이 완성되면서 하구역에서 살아가는 재첩도 결국 자취를 감추게 됐다.

강물이 바닷물과 만나서 섞인 물을 기수(汽水)라고 한다. 강물과 바닷물이 섞이고 밀물과 썰물의 차이에 따라 염분 농도가 다양하게 변하다 보니 기수가 흐르는 하구역에서는 역동적인 생태환경이 조성된다. 국립환경과학원의 2015년 조사에 따르면 열린 하구인 탐진강의 경우 수달 등 멸종위기 야생생물 9종을 포함해 총 1131종의 생물이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하구는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처가 될 수 있는 생태계의 보고라 할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담수 확보와 산업발전이라는 목적하에 낙동강, 금강, 영산강 하구에는 하굿둑들이 건설된 바 있다. 하굿둑은 담수의 안정적인 공급을 돕는다는 효과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바닷물의 흐름을 막아 하구 수생태계가 단절되고, 녹조 등의 수질관리를 곤란하게 한다는 부정적인 영향이 크다. 열린 하구를 가진 섬진강과 달리 낙동강 하구 내 재첩이 모습을 감추고, 연어와 같이 강과 바다를 오가는 어류들이 사라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금껏 우리 인간에게 환경은 생명과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의 착각과 만용에 대해 우리는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과 가뭄, 미세먼지와 폐플라스틱으로 인한 피해 등 환경훼손의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는 일명 '인류세(Anthropocene)'의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제까지의 경제성장 중심의 기조만으로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뤄나가기 어렵다. 사회 전반에서 녹색 전환이 이뤄져야 하고 물 관리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하구의 지속가능한 운영에 대해 눈여겨볼 만한 사례가 일본의 도네가와 하굿둑이다. 도네가와 하굿둑은 일본에서 유역면적이 가장 넓은 도네 강 하류에 위치한 하굿둑으로 낙동강 하굿둑보다 10여년 빠른 1971년에 완공되었다. 낙동강 하굿둑과 달랐던 점은 처음부터 하구역의 보존과 담수의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하굿둑 상·하류의 염분 농도를 상시로 관찰하며 수문을 탄력적으로 운영하였고 그 결과 50여년간 하구역을 보존하면서도 적정 염분 농도의 범위 내에서 용수를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을 유지해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하구역을 비롯한 수계의 자연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곳곳에서 대두되고 있다. 물론 하구 자체의 복원에만도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예컨대 하굿둑이 건설된 이후 주변에는 생활·공업·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여러 취수장들이 들어섰다. 지하수 이용, 어업 인허가 등 이해관계도 복잡하다. 지금까지와 달리 개발과 보전의 조화 속에서 지속가능한 하구 환경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법적 기반도 마련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하구역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용수공급 체계를 마련하고 새로운 이해관계에 대한 보상 등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다.


하구는 상류에서 내려오는 강물의 입장에서는 마지막 종착역이지만, 바다를 통해 들어오는 물과 생물들에게는 관문이자 시작점이다. 하구가 하구로서 제기능을 할 수 있을 때 하천이 자연스레 굽이쳐 흐르며 자연성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이처럼 자연성을 회복하는 데는 여러 가지 제약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모두가 지혜를 모으고 보완방안을 찾아 나간다면 하구역이 살아 숨쉬는 녹색의 시대를 만날 날이 앞당겨질 것이다.
건강한 하구역을 후손들에게 당당하게 물려줄 날이 속히 오길 기대한다.

박천규 환경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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