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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 '룰의 함정'에 빠진 한국

양형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2.30 16:51

수정 2018.12.30 17:13

[윤중로] '룰의 함정'에 빠진 한국

하루 후면 무술년이 가고 기해년이 온다. 숨가쁘게 달려온 1년이었다. 매년 세밑이 되면 묵은해의 아쉬움을 새해의 희망으로 밀어내곤 했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새해 희망을 떠올리려 할수록 불안감만 눈덩이처럼 커져간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먼저 정부는 계층 간 화합을 얘기하지만 우리 사회의 갈등은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약자에 대한 차별 해소를 약속했지만 다수에 대한 역차별을 낳고 있다. 정부는 혁신을 부르짖지만 규제는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웠지만 서민의 소득이 늘기는커녕 생존조차 힘들다. 정부는 화합과 공정을 부르짖지만 노동계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경영계의 목소리는 점점 무시되고 있다. 심지어 공권력은 노조원에게 폭행을 당하는 기업 임원을 보고도 막아주지 못하는 무법천지가 되고 있다. 이는 현장 지휘관이 소극적인 '룰(규칙)'의 덫에 걸려서 소신 있게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는 '룰의 함정'에 빠진 탓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이처럼 틀에 박힌 규칙에 얽매여 만사를 소극적으로 대하는 행태는 공직사회를 중심으로 민간기업에까지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긴 하다. 지난 정권에서 도를 넘는 폭력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공권력 수단을 사용한 행위에 대해 정권이 바뀐 후 경찰 지휘관을 법정에 세우는 마당에 어떤 간 큰 공무원이 소신을 지킬 수 있겠는가.

문득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교전 규칙)'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주예멘 미국대사관에 반미 시위대가 몰려온다. 시위대 뒤에 숨은 테러리스트들은 대사관을 향해 총을 쏜다. 대사관을 지키던 미국 해병대 대령은 부하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발포명령을 내린다. 현장 지휘관인 대령의 선택은 정당방위 차원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민간인 살상은 교전규칙 위반이다. 그 후 미국 정부는 민간인 살상의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대령에게 소송을 제기한다. 이 영화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현상과 닮아있다.

규칙과 융통성의 차이는 어느 정도일까. 법과 현실의 차이는 어느 정도일까. 아무리 완벽한 규칙이나 매뉴얼도 돌발변수가 많은 현장에서 지휘관의 판단과는 괴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 현실은 현장이나 상황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규칙에만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을 보면 현실과 괴리가 있는 포퓰리즘적 규칙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있다. 먼저 최저임금제는 소득양극화 해소를 해결하기는커녕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고용을 어렵게 하고 있다. 정부는 주휴시간까지 근로시간에 포함하는 것도 비현실적이란 지적이다.
52시간 근무제의 경우 기업은 생산성 저하와 임금부담 가중으로 고용을 꺼리게 하고, 저임금 근로자의 경우 급여가 줄어들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도 '위험의 외주화'를 막겠다는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현실적 방안인지 의문이 든다.


'허드슨강의 기적'이란 영화를 보면 기장은 공항 이륙 후 항공기 엔진이 고장난 상황에서 운항규칙에도 없는 소신에 따라 뉴욕 허드슨강에 착륙, 탑승객 155명 전원을 살린다. '냄비 안의 개구리'로 전락한 한국 경제를 위해 정부가 할 일은 탁상에서 이뤄지는 '규칙'보다 현장에서 이뤄지는 '소신'을 존중하는 게 아닐까.

hwyang@fnnews.com 양형욱 정보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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