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피싱 피해자가 '사기 피의자'로 전락… 대포통장 '주의보'

이병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10 16:57

수정 2019.01.10 16:57

대출에 통장·카드 필요하다 속여 피해자 계좌를 대포통장 악용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처벌 대상.. 지난해 대포통장 35.2%나 급증
타인에게 통장·카드 보내면 안돼
#. 김정숙씨(52)는 '메신저 피싱'에 속은 뒤 사기 혐의로 고소당하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지난해 11월 말 사금융으로 위장한 사기범이 대출을 해주겠다며 "대출금 상환용 체크카드가 필요하다"고 김씨의 카드를 요구해 이에 응한 것이 화근이었다. 김씨는 체크카드를 택배로 보내고 신분증 사진도 찍어 금융사기범에게 전달했다. 김씨의 계좌는 고스란히 '대포통장'으로 범죄에 이용됐다. 결국 김씨는 같은 사기범에게 속아 해당 계좌로 송금한 피해자에게 사기 혐의로 경찰에 신고당했다. 김씨는 사기 용의자로 몰려 경찰의 조사를 받고, 인터넷 뱅킹도 막혀 생활에 불편을 겪고 있다.
피싱 피해자가 '사기 피의자'로 전락… 대포통장 '주의보'

금융 당국의 단속 강화로 이른바 '대포통장(보이스피싱에 이용되는 계좌)' 확보가 힘들어지면서 피해자 계좌를 대포통장으로 이용하는 등 보이스피싱이 양상이 고도화되고 있다. 금융사기범이 피해자 명의의 통장이나 카드가 필요하다고 속여 사기 계좌로 이용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사기범으로 몰리는 억울한 일을 겪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현행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사기 당하고도 피의자로 전락

10일 경찰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사기 피해자의 계좌를 대포통장으로 악용하는 방식으로 금융사기 양상이 변하고 있다.

기존에는 금융사기범들이 노숙인 등 명의의 대포통장을 구매해 범죄에 악용해 왔다. 그러나 금융 당국이 신규계좌 개설시 심사나 의심거래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등 근절 노력을 기울이면서 이같은 방식의 금융 사기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금융사기범들 사이에서 대포통장이 최고 400만원 가량에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 중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최근에는 금융사기범들이 거래하는 기존의 대포통장과 함께 명의인을 속여 마련한 대포통장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대포통장) 거래가가 올라가면서 대출 사기와 함께 명의인을 속여 통장이나 카드를 넘겨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실제 통장을 매매 또는 대여한다는 불법 문자메시지 광고 신고는 지난해(5월 기준) 전년 대비 139.2% 늘어났다.

이 같은 금융사기는 주로 신용도가 낮아 은행 대출이 어려운 서민들을 노려 이뤄진다. '신용도 등급을 높이기 위해 입출금 실적이 필요하다', '사금융이기 때문에 개인 계좌만 이용한다'등의 이유로 피해자를 속인 뒤 카드를 넘겨받는 방식이다.

대출사기범들은 이렇게 넘겨받은 계좌를 대포통장으로 범죄에 악용한다. 대출 피해자가 통장 명의자를 신고하더라도 양측 모두 사기를 당한 입장이기 때문에, 경찰 수사망이 흐뜨러지는 것이다.

■대포통장 전년比 35% 증가

이런 영향으로 지난 2017년까지 줄어들던 대포통장은 지난해부터 다시 늘어나고 있다. 대포통장 적발 건수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연속 줄었다. 그러나 지난해(10월 기준)에는 또 다시 전년 동기 대비 35.2% 급증했다.

한 경찰서의 일선 지능범죄수사관은 "하루에도 2~3건씩 보이스피싱 피해 관련 신고가 접수되고 있다"며 "피의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통장을 넘겨준 사기 피해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범죄 피해자 명의의 통장이 대포통장으로 악용될 경우, 사기 피의자로 몰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도 처벌받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전자금융법에 따르면 체크카드 등의 '접근매체'를 타인에게 양도할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경잘 지능범죄수사팀 관계자는 "초범이고 고의성이 없다고 입증될 경우 기소유예되거나 소액의 벌금으로 사건이 마무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그러나 본인 부주의로 통장과 카드 등을 넘겨준다면 피의자로 적용될 수 밖에 없고,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기 때문에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메신저나 통화 등을 통한 대출 알선은 일단 의심하고, 타인에게 통장이나 카드를 보내는 행위는 절대 삼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bhoon@fnnews.com 이병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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