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서]

숨 좀 쉽시다


'장갑, 마스크, 물티슈.'

요즘 정부세종청사를 자전거로 출퇴근할 때 꼭 챙기는 준비물이다. 장갑은 겨울 칼바람을 이기기 위함이고 마스크는 미세먼지용이다. 물티슈도 미세먼지 때문에 늘어난 물품 중 하나다. 서울시 자전거 서비스인 '따릉이'처럼 세종시에도 '어울링'이 있다. 출근길에 어울링을 이용한다. 매일 아침 주차 중인 자전거의 안장에는 항상 뽀얀 먼지가 쌓여 있다. 물티슈로 이 먼지를 닦는 것부터 출근길이 시작된다.

불과 몇년 전이다. 중국에서 공기도 캔으로 만들어 판다는 뉴스를 접하고 코웃음을 쳤던 때가. 그때는 '중국판 봉이 김선달'이라거나 '중국엔 워낙 사람이 많아서 별난 사람도 많구나' 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어느새 우리 얘기가 됐다. 공기 캔은 아니지만 대신 미세먼지 마스크를 사고, 공기청정기는 나왔다 하면 불티나게 팔린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는 게 좋을까 그냥 두는 게 나을까 고민하고, 기온의 변화보다 미세먼지 수치가 더 궁금하다. 가끔 보는 푸른 하늘은 하루의 기분을 좌우한다. 이렇게 공기 질의 악화는 우리 일상을 '악화'시켰다.

이번 주 내내 우리는 '비상저감조치'라는 생경한 단어에 촉각을 세웠다. 비상저감조치가 3일 연속(13~15일)으로 시행된 것은 2017년 비상저감조치를 도입한 이후 처음이다. 비상저감조치가 떨어지면 현재 수도권 공공·행정기관은 차량 2부제와 사업장 미세먼지 저감 조치가 의무화된다. 다음달 15일부터는 미세먼지 특별법 시행으로 이런 조치가 전국으로 확대된다. 다만 비상저감조치 발동은 지자체의 재량에 맡기고 있어 여전히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정부가 즉각 취할 수 있는 대처는 비상저감조치가 최선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은 맑은 공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안다. 수치로 공식화하지 않았으나 중국발 계절풍이 대량의 먼지를 동반하고 있다는 것쯤 말이다. 그러나 중국에 노골적인 불만이나 요구를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미세먼지 문제는 외교·통상 문제와 엮여 있다. 환경부가 아닌 외교부에 기후환경과학외교국이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우리에겐 지난 2017년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이라는 트라우마가 있다. 당시 우리 경제가 얼마나 큰 타격을 입었나. 가뜩이나 불황이라고 하니 중국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에 경제발전을 그만하라고 말할 수도 없잖아요." 한 공무원의 이 말은 현 정부가 미세먼지 문제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잘 묘사한다. 정부가 내는 미세먼지 관련 대책마다 외부 요인은 일단 패스하고, 자체 발생 먼지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내부 요인에 집중하는 것은 이런 사정 탓이다. 중국이라고 속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고, 우리 모두가 미세먼지 전문가가 돼가고 있는 현실이 씁쓸하다.

그래도 '티'라도 낼 기회가 생겨 다행이다. 이달 23일 한국과 중국은 환경협력공동위원회를 서울에서 연다. 여러가지 주제가 있지만 핵심은 역시 미세먼지와 황사다.

정부는 그동안에도 중국과 긴밀히 공조 중이라 홍보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효성이다. 이번 공동위에서 우리 국민이 감내하고 있는 숨 쉴 권리를 우리 정부는 세련되게 주장해야 한다.
문재인정부는 국민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태어난 정권이다. 국민들이 최소한 숨은 쉴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물티슈 없이 자전거 타는 날이 오길 바란다.

km@fnnews.com 김경민 경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