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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선임기자의 경제노트]코너로 몰리는  탈원전 정책

김성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23 15:35

수정 2019.01.24 01:06

국내외 전문가 '탈원전 문제있다' 지적 잇따라
원전 관련 산학연, '탈원전 공론화' 목소리 높여
고사위기 원전업계, 대국민 호소로 정부 압박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 민주평화당 김경진 의원 등이 잇따라 '탈원전 속도 조절'이나 원전산업 생태계의 붕괴를 우려하면서 문재인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이른바 탈원전 정책이 점차 코너에 몰리고 있다. 특히 일부 '탈원전'을 극력 반대하는 야당 및 정치권, 시민단체에서 33만명의 서명을 받아내 국민청원으로 탈원전 정책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다. 정부는 각계의 정책변화 요구에도 거듭 기존 방침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사를 강하게 밝혀 왔다. 하지만 이번 국민청원에 따라 '30일 이내에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공식 답변하겠다는 청와대는 고민에 빠졌다.

■"원전안전 악영향·일자리 위협 대책 있나"
23일 원자력 산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부품 생산업체와 설계, 용역업체 등 600개 이상의 관련 기업의 신규 일감이 끊겨 수년 내 6조원에 이르는 원전시장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미 원자력을 전공하는 대학 및 대학원생이 급감하고 있고, 오는 2030년까지 최대 1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보고서도 나왔다.


국책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원전산업 생태계 개선방안’을 봐도 탈원전 정책이 계획대로 진행되면 한국전력기술과 한국수력원자력과 계약을 체결한 원전 관련 업체 697곳 중 주기기·보조기기·예비품 부문업체 약 400곳의 산업 이탈이 전망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내 전체 원전사업자의 57% 규모다. 특히 설계 부문 업체중에서는 사업 규모를 유지하겠다고 응답한 경우가 단 한 곳도 없었다.

하지만 정부는 원전 해외수출을 적극 지원해 국내 관련산업 붕괴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내 원전 산업 인력은 해외 원전 추가 수주가 없으면 현재 3만8800명에서 2030년 2만7000명으로 감소한다. 정부가 해외 수준에 목을 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원전 수출과 국내 부품 시장은 관련성이 크지 않다고 반박한다. 원전의 주기기인 터빈은 수출국 제품을 사용하는 데 비해 기타 부품은 각국이 원자력협정에 의해 자국산으로 대체 사용할 것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원전 수출 수주에 성공한다고 해도 기타 기기에 해당하는 원전 부품 수출에는 큰 타격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최근에는 해외 다른 업체와 컨소시엄 형태로 원전을 수출하는 경우가 많아 국내 부품 업체의 입지는 갈수록 줄어들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더구나 '탈원전'하겠다는 국가의 부품을 장기 공급선으로 믿어 줄 계약 당사자가 있을리 만무하다.

원자력학회 관계자는 "중·장기적인 산업 생태계 붕괴 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원전의 유지·보수 부품과 기술력 확보도 어려워진다"면서 "가동 중인 국내 원전의 안전에 미치는 악영향은 누가 책임질 수 있나"고 반문했다.

이런 가운데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를 위한 범국민서명운동본부'는 지난 21일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고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를 촉구하는 뜻을 담은 온·오프라인 33만여명의 서명부와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청와대에 공식 전달했다. 범국민서명운동본부는 자유한국당과 시민단체인 원자력정책연대이 손잡고 지난달 13일 출범했다. 이날 청와대앞 분수에서 가진 집회에는 울진군·울진군의회·울진범대위·원자력정책연대·전국원자력대학생연합·한국수력원자력 노동조합 관계자와 최연혜·강석호·이채익·최교일·윤상직 자유한국당 의원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서명운동을 주도한 한국당 최연혜 의원은 "탈원전 정책은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전문가의 의견 수용 없이 일방적이고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한울 3·4호기는 총사업비 8조 2600억여원을 투입해 1400메가와트(MW)급 한국 신형 원전(APR1400) 2기를 짓는 사업이다. 이미 7000억원 정도 집행됐지만, 지난 2017년 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을 백지화하면서 사실상 공사를 중단시킨 상태다.

"해외원전 수출 효과는 희망고문일 뿐"
원전 업계 및 학계는 국내 여론 환기에 기대를 걸고 있다. 여당 중진의원이나 야당 유력 의원 등 정계 주요 지도층 인사들이 '탈원전 반대'나 속도조절을 주장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면서 대국민 홍보전에 자신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원전기업지원센터가 지난 21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원전산업 및 인력 생태계 유지를 위한 중소·협력업체들을 위한 설명회에서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난하는 발언이 공·사석상에 속출했다.

한 원전 부품 협력업체 관계자는 “정부와 한수원이 이야기하는 해외원전은 수출이 성사되어도 업체들은 5~6년이 지나야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희망고문일 뿐 실질적인 해결방안이 되지 못한다”라고 성토했다.

이 관계자는 “원전기업들이 힘든 상황 속에서도 사업을 유지하는 만큼 정부와 한수원에서도 원전 생태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익명의 업체 관계자는 "매번 고충이나 애로사항을 파악해 가는데 정부가 실상을 모를리가 없다"면서 "5년짜리 단임 정권이 최소 수십년을 걸쳐 파장을 불러 일으킬 원전 정책을 결정하지말고 차라리 국민투표를 실시하는게 합리적"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대선 공약대로 '탈원전'을 선언해 버렸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지지자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한·미 FTA 반대에서 찬성으로 입장을 바꾼 전례가 있지 않느냐"며 답답해했다.

한국원자력산업회의에서 운영 중인 원전기업지원센터에서 처음으로 시행한 이 날 설명회에는 서울ㆍ경기 지역 50여 개 중소 및 협력업체에서 70여 명이 참석했다.

설명회는 원전기업지원센터 운영계획과 KNA(코리아누클리어파트너스), 한국원전수출산업협회, 한국수력원자력 순으로 중소기업 수출지원 방안과 동반성장 협력에 대해 소개했다.

이 자리에서 박동원 원전기업지원센터장은 “이번 설명회는 국내 원전 중소·협력업체들의 경영상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수립하기 위해 마련됐다”라며 “원전 안전과 수출을 위한 공급망 유지 방안과 특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금융 부문의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 마련을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설명회에 참석한 한 업체 관계자는 “신한울 3·4호기에 대한 건설이 힘들어 보이는 상황에서 중소기업들이 생존할 수 있는 사업을 마련해 줄 것”을 한수원에 당부했다.

원전기업지원센터는 23일 고리원자력홍보관에서 부산·울산지역 설명회를, 24일에는 더케이호텔 경주에서 설명회를 잇따라 진행한다. 오는 28일과 29일에는 각각 대전 인터시티호텔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설명회를 개최한다.
원전기업지원센터는 "이번 ‘권역별 설명회’를 통해 청취된 원전산업 중소·협력업체들의 애로사항을 파악하고 실질적 지원방안을 수립·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win5858@fnnews.com 김성원 산업·경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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