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약속 파기가 유행하는 울산

최수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28 16:44

수정 2019.01.28 16:44

[기자수첩] 약속 파기가 유행하는 울산

약속(約束), 장래의 일을 상대방과 미리 정해 어기지 않을 것을 다짐하는 무형의 개념이다. 약속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다. 사회구성원 간의 약속이 깨질 때는 누군가는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에 대한 우려 때문에 종이에 그 내용을 써 서명이나 도장으로 확인하는 등 다양한 유형으로 약속 이행을 강조해왔다.

올해는 3·1만세운동 100주년이다. 울산에서는 매년 3·1운동 기념일쯤이면 약속과 관련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회자된다.
당시 울산의 만세운동은 서울의 3·1운동 한 달 뒤인 4월 4일 지금의 울산시 중구 병영초등학교에서 일어났다. 장날이었던 이날 울산시민들은 일본 경찰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만세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약속을 비밀에 부쳤다. 그 약속은 이날 축구경기를 알리는 호각 소리와 함께 축구공을 하늘 높이 차 올리는 것이었다. 약속은 지켜졌고 만세 소리는 울산 병영 일대를 가득 메웠다.

하지만 최근 울산은 산업수도이자 노동자의 도시답게 단체협약과 관련해 이를 무시하는 관행이 많아 사회적 문제로 번지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 25일 조합원투표를 통해 노사 임단협 잠정합의안을 부결시켰다. 임금 부분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달리보자면 노사관계에서는 한번 정한 약속이 그만큼 중요하고 이를 아는 조합원들은 아주 신중한 태도를 보인 셈이다.

같은 날 서울 서초구 알루코그룹 본사 건물 앞에서 울산 고강알루늄 노동자 2명이 집회 도중 중상을 입고 쓰러져 119응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됐다. 이 회사 노사갈등은 지난해 6월 사측이 경영 악화를 이유로 단체협약 해지를 일방통보하면서 시작됐다. 울산대학교병원도 지난해 임금·단체협약 협상으로 비정규직의 고용 문제를 합의해놓고 지난해 12월 비정규직원 10명을 일방적 계약종료했다. 노조는 일방적인 해고였다고 반발했고 병원 측이 물러서면서 일부는 되돌아왔다.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다.
지역 노동계에서는 경기침체를 핑계 삼아 임단협을 파기하는 행위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며 개탄했다. 사기(史記) '계포난포열전(季布欒布列傳)'의 '일낙천금' '계포일낙' 고사를 비롯해 동화와 속담 등에는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약속은 지킬 때 의미가 있다.

ulsan@fnnews.com 최수상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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