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고달픈 세종시 ‘길과장’

한해 서울출장비 1200억원
장차관 상주해 낭비 줄이며 비효율 극복 장기 대안 찾길


"장관들이 세종시에서 근무하는 노력을 조금 더 해달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주 22일 청와대에서 연 국무회의에서 내린 당부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으로부터 행안부의 세종시 이전 계획을 보고받은 뒤였다. 장관들에게 이례적 서울행 자제령을 내린 배경은 뻔하다. 세종시의 행정수도 기능의 비효율성이 여전하다는 뜻이다.

세종시 출범 초기 지방분권 세미나 패널로 참석했을 때의 비화다. 당시 세종시로 출퇴근하던 한 중견 공무원의 블랙코미디 같은 푸념이 생각난다. "세종시에 근무하는 날이 일주일에 5급은 5일, 4급은 4일, 3급은 3일…"이라는. "그럼 장·차관은 며칠이냐"는 필자의 우문에 금세 "0"이라는 현답이 돌아왔었다.

그때에 비해서 사정은 좀 나아졌을 법하다. 국무조정실에서 발표한 '세종권 이전 중앙부처 공무원 거주 현황'에 따르면 (2017년 8월 기준) 세종권 공무원 1만2934명 중 세종시 인근 거주자는 전체의 90%가량인 1만1522명이다. 그러나 고위직일수록 서울 체류시간이 길어지는 현상은 진행형이다. 문 대통령도 "장·차관들이 세종시에서 얼마나 근무하는지를 살펴봤더니 월평균 4일 정도밖에 안된다"고 지적했지 않나.

그러니 '길 과장' '길 국장'이란 자조도 사라질 리가 없다. 장·차관이나 청와대, 혹은 국회 보고를 위해 서울과 세종을 오가는 공무원들이 지금도 많다는 얘기다. 막대한 국민 세금이 거리에 뿌려지는 꼴이다. 얼마 전 한국행정학회의 추산 결과를 보라. 세종시 이전으로 공무원 출장비용만 해마다 1200여억원이었다. 행정·사회적 비효율 비용은 2조8000억∼4조8800억원에 달했다.

더욱이 당사자인 '길 과장'들의 일상도 고달프다. KTX가 있다지만 왕복 4시간이 걸리는 출장을 일주일에 평균 두세번씩 해야 한다니…. 길 위에서 허비한 시간만큼 제대로 된 정책을 입안할 기회도 날리는 꼴이다. 국가경제의 효율성 차원에서 보면 수도분할은 잘못 끼운 첫 단추임이 확연해지고 있는 셈이다.

물론 세종시는 국토균형개발이란 대의를 지향한다. 다만 그 포장지 속에 포퓰리즘이란 거품이 낀 게 태생적 한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수도이전 공약으로 "(선거에서) 재미 좀 봤다"고 고백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국민에게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포장했지만, 대선에서 충청권 표를 지키려는 속마음까지 부인할 순 없다.

그런 맥락에서 독일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통독 이듬해인 1991년 독일은 서독의 임시수도 본에서 역사적 수도 베를린으로 천도를 결정했다. 그러나 본의 공동화를 막는다는 취지로 국방부·보건부 등 6개 부처를 잔류시킨 게 화근이었다. 소속 공무원들은 본에서 베를린까지 600㎞를 메뚜기처럼 옮겨다녀야 했다. 장·차관이 연방의회가 있는 베를린에 머무르면서다.

독일은 여태껏 이로 인한 예산 낭비를 줄이려 사투 중이다. 연방정부 영상회의시스템 구축이 대표적이다. 공무원 출장비를 줄이려고 복수 차관제를 도입해 차관 한 명을 본청사에 상주시킨 것도 그 일환이다. 그러나 갖은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행정의 비효율성을 온전히 극복하진 못하고 있다.
반면 텔레콤과 DHL 등 대기업 본사 유치로 본의 지역경제는 활성화되고 있다고 한다. 정부 부처가 아니라 민간이 국토균형개발을 성공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와 역순이지만 수도분할의 홍역을 겪고 있는 독일을 거울삼아야 할 대목이 바로 이것일 듯싶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