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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 믿을 수 있는 아빠와 잘해주는 아빠

박인옥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31 17:22

수정 2019.01.31 17:22

[윤중로] 믿을 수 있는 아빠와 잘해주는 아빠

믿을 수 있는 아빠와 잘해주는 아빠, 통상 아이들이 아빠를 떠올리면서 갖는 이미지를 이렇게 대별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해 한 청소년상담센터에서 상담이 진행됐다. 한 여중생이 하굣길에 소위 '일진'이 포함된 학생들과 마주쳤다. 이들은 다짜고짜 돈을 요구하면서 주위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다. 참다 못한 이 학생은 휴대전화를 꺼내들고 아빠에게 연락했다. 이후 "아빠가 여기로 온다.
혼나고 싶으면 계속 있고, 그렇지 않으면 이 자리를 떠나라"고 소리쳤다. 순간 당황한 일진 등은 "다음에 보자.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는 협박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잠시 뒤 이 학생의 아빠는 택시에서 내려 딸의 상태를 확인하고 집으로 갔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빠는 해당 학교를 방문해 학교폭력 피해를 밝히면서 대책을 요구했으나 "학생에게 피해가 없지 않으냐"거나 "친구 사이니 친하게 지내도록 훈육하겠다"면서 사건을 적당히 무마하려 했다는 것이다. 아빠는 경찰서를 방문했다. 경찰 역시 물리적인 피해가 없다는 이유로 달랬다고 한다. 이 아빠는 결국 변호사를 선임해 교육당국에 민원을 제기하는 한편 학교 측에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결국 학교는 일진 등을 파악, 피해학생에게 사과하도록 했다. 아빠는 딸이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이들을 용서하겠다는 말을 전해듣고 나서야 해당 사건을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이 학생은 "평소 무뚝뚝한 아빠였지만, 곤경에 처한 나를 끝까지 지켜줄 믿을 수 있는 아빠"라고 상담사에게 말했다고 한다.

다른 상담 사례도 있었다. 한 여고생은 친구들과 말다툼을 벌였고 이들을 피해 평소 다니던 하굣길 대신 우회길을 통해 집으로 왔다. 마침 아빠가 집에 계셔서 안심했다. 아빠는 "오늘 학교에서 안 좋은 일 있었니"라고 물었다. 학생은 "왜 그런 질문을 하세요"라고 되물었고 아빠는 "친구 몇 명이 집으로 찾아와 너 언제 오느냐고 물어보던데. 화가 난 것 같던데"라고 전했다. 학생이 말다툼을 했다고 설명하자 아빠는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야지. 그 친구들에게도 잘 지내라고 잘 타일렀다. 잘 했지?"라며 학생을 안심시켰다. 이 학생은 "평소 다정다감하고 나를 예뻐해주는 아빠"라면서도 "다음날 학교 가는 게 두려웠다"고 털어놨다는 것이다.

두 아빠의 이야기에 옳고 그름을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두 사례에 우리 사회의 안전망을 대입해보자는 것이다.

최근 버스 안 흉기 소지범 옆에서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통해 신고했는데 출동 경찰관이 "신고자 계십니까"라고 큰소리로 외쳐 신고자를 두려움에 떨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112문자신고 시스템은 45자 이내로 글자 수 제한이 있어 흉기와 관련된 내용은 출동 경찰관에게 접수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경찰은 글자 제한을 45자에서 70자로 늘리기로 했다. 사회 안전망의 하나인 112신고 시스템에 문제점이 발견됐고 이를 보완하는 대책을 마련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검찰과 경찰은 '사회적 약자 보호' '사회 안전망 확충'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 기관의 수장이 교체될 때마다 '일성'으로 내세우는 것이기도 하다. 사회 안전망을 책임지는 기관은 국민들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한다.
친절한 대민서비스인지, 믿을 수 있는 공권력인지를 말이다.

pio@fnnews.com 박인옥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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