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그후]

①'방탄법원' 논란…영장심사 개선 목소리

© News1 성동훈 기자

'밀실' 영장심사…'본안 판단'·'로또영장' 지적도
檢 "기준공개·전례기록" vs 法 "법관 판단권제한"

[편집자주]2년 동안 사법부를 강타했던 사법농단 사태가 헌정사상 초유의 전직 대법원장 구속기소라는 흑역사 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이번 기회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제왕적 대법원장 중심의 사법행정을 전면 개혁하는 것은 물론 수사·사법기관의 제도와 관행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법농단 사태가 남긴 과제를 짚어봤다.

(서울=뉴스1) 이유지 기자 =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가 장장 8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과정에서 압수수색 및 구속영장 심사를 두고 불거진 법원과 검찰의 갈등은 사법시스템상 미비점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이번 수사를 계기로 영장실질심사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6월 본격적으로 '사법농단' 수사가 개시된 후 영장을 둘러싸고 시작된 법원과 검찰의 신경전은 채 3개월이 지나지 않아 극에 달했다. 당시 사법농단 수사 관련 영장 청구 기각률이 통상의 발부율에 해당하는 90%에 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법원은 '방탄법원'이라는 비판을 받게 됐다.

전·현직 대법관과 법관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청구 단계에서부터 기각 사유로 '소환조사·임의제출을 먼저 요구하라' '그 장소에 혐의사실 입증을 위한 자료가 존재한다는 개연성이 부족하다' '법원행정처장이 직접 문건을 작성하거나 보관하고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법원이 통상의 형사사건에 비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일개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에 따라 대법관이 재판했다 보기 어렵다'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영장전담판사들을 통해 지득한 수사진행상황을 전달한 것이 공무상 비밀의 누설이라고 보는 것에 의문이 있다' '재판연구관이 해당 사실을 다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사유는 법관이 예단을 갖고 사실상 본안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판단 기준에 대해 논란이 일자 법원은 이 수사에서 공무상 비밀누설 등 혐의로 처음 구속영장이 청구된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출신 유해용 변호사에 대해 기각을 결정하며 200자 원고지 18장에 달하는 장문의 사유를 밝혔다. 통상 50자 내외의 사유를 공개해 온 법원으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으나 의혹을 불식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검찰은 유 변호사가 대법원에서 반출한 재판 관련 문건들에 대해 법원이 앞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할 때에는 '기밀이라 안 된다'고 했다가, 구속 영장을 기각할 때는 '기밀이 아니라 죄가 되지 않는다'고 논리를 뒤집어 모순됐다며 '기각을 위한 기각'이라 비판했다. 이미 피의자가 증거를 파쇄한 상황에서 '증거인멸 염려가 없다'고 본 것 또한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는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니냐는 지적과 동시에 영장 발부·기각의 기준을 공개하지 않고 밀실에서 영장전담 판사들이 독자 판단하는 시스템 자체가 이른바 '로또영장'을 만드는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영장 발부 기준을 공개하거나 항고제도를 도입하는 등 전례를 남겨 법관의 자의적 판단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고 검찰의 영장 청구 남발을 막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검찰 관계자는 "양형 기준처럼 압수수색 및 구속 영장의 발부 기준도 정립해 나가야 한다"며 "기각이 되면 무조건 재청구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영장 재판에도 항고제도를 도입, 결정례를 쌓는 작업을 해나가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공개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제안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특히 구속 재판의 경우 이미 변질돼 사활을 걸고 내용을 갖고 싸우는, 본안 이상의 기형적인 재판이 돼버렸는데도 재판부는 기록을 남기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다"며 "영장전담 재판부가 사안의 중요한 쟁점, 논의에 대해 기록을 남겨 전례를 만들고 사후 검증하는 구조가 돼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법원 측은 제도 변경이 쉽지 않을 것이란 입장이다. 한 법원 관계자는 "기준이 너무 구체적이면 개별 법관들의 재량적 판단권을 제한할 수 있고, 추상적이거나 광범위하면 그 자체가 의미 없을 수 있다"며 "범죄혐의 소명과 영장의 필요·상당성 여부는 법관이 헌법·법률·양심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밀했다. 아울러 "영장심사도 수사단계고 밀행성이 보장돼야 하는데 내부적으로 기준이 있을 수 있지만 공표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