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그후]

②'먼지털이' 압수수색…수사·인권 절충점은

© News1 성동훈 기자

영장범위 넘겨 포렌식…"증거아닌 혐의찾나" 비판
法 "'등' 허용 말아야" vs 檢 "수사기관 손발 묶나"

[편집자주]2년 동안 사법부를 강타했던 사법농단 사태가 헌정사상 초유의 전직 대법원장 구속기소라는 흑역사 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이번 기회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제왕적 대법원장 중심의 사법행정을 전면 개혁하는 것은 물론 수사·사법기관의 제도와 관행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법농단 사태가 남긴 과제를 짚어봤다.

(서울=뉴스1) 이유지 기자 =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과정에서는 검찰이 영장 청구를 남발하고 압수수색을 하며 영장에 적시된 범위를 넘어 이른바 '먼지털이식'으로 수색하는 등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특히 컴퓨터 등 디지털 증거 압수수색 포렌식 과정에서 법원이 허용한 검색어 외에 다른 단어를 입력하는 등 별건 혐의를 찾으려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법농단' 수사에서 공무상 비밀누설 등 혐의로 처음 구속영장이 청구된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출신 유해용 변호사는 검찰의 1차 압수수색 후인 지난해 9월 취재진과 만나 "압수수색 절차에 중대하고 명백한 잘못이 있었다"며 "당시 검찰은 영장에서 허용한 특허사건 번호 2개 외에도 다양한 검색어를 입력해 무려 5시간 가까이 컴퓨터에 있는 최대한 많은 파일을 들여다보려 했다"고 주장했다.

검찰 측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허가받은 특허소송 문건을 포렌식하다보니 그외에 불법 유출된 기밀문건으로 보이는 대법원 재판연구관 보고서 및 판결문 초고 등 수만 건을 발견, 인지한 이상 범죄의 증거로 추정되기에 확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는 입장이다.

당시 유 변호사는 이 문건들에 대한 임의제출 요구를 거부, 증거를 훼손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작성했으나 이후 법원에서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되고 심사가 지연되는 과정에서 가위 및 드라이버 등으로 문서와 하드디스크 등을 파쇄했다. 검찰은 법원이 범죄의 의심이 있는 증거를 인멸하도록 방조한 것이라 비판했다.

지난해 10월 '사법농단 키맨'으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구속영장 발부 직후 최인석 당시 울산지방법원장은 법원 내부통신망에 '압수수색의 홍수와 국민의 자유와 권리'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검찰을 무소불위의 빅브라더로 만들어 준 것은 다름 아닌 우리 법원"이라며 "법원과 판사는 검사에게 영장을 발부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라, 장삼이사의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는 "검찰은 수사에 착수하면 일단 주거 등 개인적인 공간들을 먼저 들여다보고 시작하는데, 문제는 증거를 찾기 위해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혐의를 찾기 위해 들여다보려 하는 것"이라며 "범죄수사라는 한 마디로 개인 사생활을 다 들여다볼 수 있는 나라는 제대로 된 민주국가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일련의 상황 이후 서울고등법원은 지난달 31일 압수수색 영장의 일반적인 해석기준을 최초로 제시했다. 압수수색 영장이 명확·간결하지 않고 모호하게 쓰였을 경우 수사기관에 불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취지로, 특히 압수 목적물을 열거한 후 덧붙이는 '등'은 특정되지 않으므로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한 법원 관계자는 "범죄 혐의와 관련성이 있는 범위 내에서만 압수수색하도록 대상을 명확히 특정해야 하는데 그간 '등'을 붙여온 것은 문제였다"며 "수사 필요성에 의해 아직 밝혀지지 않은, 확인되지 않는 부분의 관련성 있는 자료들이 있기 때문에 완전히 명확하게 특정하라고 하긴 곤란하지만 최대한 관련성이 있는 범위를 한정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특히 디지털 증거인 컴퓨터나 휴대전화의 경우 사람의 인격 자체가 기기에 체화돼 그야말로 다 털리는 수가 있는데 어떤 범죄든지 무제한 허용하면 심각해진다"며 "수사 필요성만 앞세우다보면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적절히 제한하고, 수사기관도 막연히 필요성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예산 등을 투입해 새로운 디지털 증거 포렌식 기술 등을 개발하고 시도해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검찰은 이같은 방침을 범죄수사에 적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영장에 표현을 명확히, 직접적으로 쓰도록 하는 것은 납득되는 부분도 있지만 범죄와의 관련성은 압수수색 이후 법정에서 증거능력을 다퉈 제외하면 된다"며 "재판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영장으로 다 하겠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고 사실상 수사기관의 손발을 묶는 것이니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앞으로 '등'을 빼고 영장을 청구하라는 것인데 형사사법 절차로 범죄에서 국가와 국민을 방어해야 할 때, 살인·테러·부패 등 범죄의 경우에도 영장으로 검색어를 하나씩 내주고 대여섯달씩 전산장치 압수수색을 하라는 말이냐"며 "법관들 수사를 한번 받고나더니 유독 엄격하게 하겠다는 것인지, 피의자의 신분이나 범죄 성격에 따라 법적용이 달리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