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베네수엘라발 포퓰리즘 경보음

인기영합정책의 부메랑 국민 10분의1이 난민돼
文정부 타산지석 삼아야


베네수엘라의 정정이 혼미하다. 최악의 경제난이 정치파탄으로 이어졌다. '한 지붕 두 대통령' 체제가 그 징표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핵심 지지층인 노동자들까지 가세한 퇴진운동에 직면해 있다. 미국과 중남미 14개국은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정부 수반으로 이미 인정했다. 러시아와 중국이 마두로의 마지막 동아줄이다.

마두로 정권의 곤경은 예고된 결말이다. 전임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이 국민의 환심을 사는 정책에 '올인'할 때부터 비극의 싹은 텄다. 그는 석유산업을 국유화한 뒤 나라 곳간을 헐어 가짓수도 세기 힘든 무상 시책을 펼쳤다. 마두로가 국제유가 하락으로 재정이 거덜났음에도 이를 계승한 게 화근이었다.

대를 이은 인기영합의 대가는 참담했다. 작년의 연간 물가상승률은 약 140만%였다. 최근 3년간 인구의 10분의 1인 300만명이 굶주림을 못 견뎌 탈출했다. 같은 언어권인 스페인의 관광도시들은 몸 파는 베네수엘라 여성들로 넘쳐난다. 한때 세계 20대 부자국가의 현주소다. 오죽하면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최근호에 '베네수엘라의 국가적 자살'이란 제목의 논문까지 실렸겠나.

베네수엘라는 지리적으론 우리와 까마득하다. 한반도와는 지구상의 정반대편을 가리키는 대척점과 멀지 않다. 그럼에도 여기서 전해져 오는 어수선한 뉴스들이 필자에겐 먼 나라 얘기가 아닌 것처럼 비친다. 지난 연말에 읽은 한 연구기관 보고서의 여운이 목구멍에 가시처럼 걸려 있는 탓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해 12월 '베네수엘라 경제위기에서 배우는 4가지 교훈'이란 보고서를 냈다. 석유산업에 편향된 경제구조, 과도한 복지, 규제 위주의 관치경제 그리고 공직자 부정부패 등을 경제파탄의 원인으로 지목하면서다. 이 중 '석유의존형 경제'를 뺀 나머지 셋은 한국 경제의 위기요인과 오버랩된다.

특히 베네수엘라의 추락은 포퓰리즘의 덫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즉 복지지출의 불가역성이란 치명적 속성 말이다. 생각해 보라. 쥐여준 떡을 거둬들이는 게 쉬운 일인가. 재정이 바닥난 마두로 정권도 선심정책은 포기하기 못했다.

그런데도 우리 중앙정부도, 지방정부도 '베네수엘라식 착한 정책'에 눈먼 듯해 사뭇 걱정스럽다. 문재인정부는 얼마 전 24조원 규모의 사회간접자본(SOC) 시설 예비타당성 면제를 밀어붙였다. 이용객이 없어 '고추 말리는 공항'이나 다람쥐가 이용하는 도로를 닦아 '지역 표심'을 달래려 한다면 국가적 불행의 전주곡이다.

지금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는 치안마비 상태다. 마두로 정권이 또 최저임금을 34배 올리는 복지대책을 내놨지만 노동자와 청년들의 분노가 극에 이르면서다. 카라카스의 대척점에 가까운지라 경기도 성남시는 그들의 아우성이 들리지 않는 건가. 청년이 공립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 지역상품권 2만원어치를 주겠단다. 그것도 막 투표장에 들어갈, 만 19세 되는 청년에게만! 마두로판 현금살포 복지와 무엇이 다른가.

지속가능성이 없는 베네수엘라식 복지정책을 답습해선 곤란하다.
가난한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돕는 정책을 누가 탓하겠나. 이를 무조건 포퓰리즘으로 매도할 순 없다. 하지만 비용·편익 분석이나 재원조달 방안 등을 엄밀히 따져보지 않는다면 문제다. 생색은 당장에 내고, 뒷감당은 미래세대에 떠넘기는 정책이 결국 망국병을 부르는 독소임을 베네수엘라 사태가 웅변한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77@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