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시리즈]

사회 가장 낮은 곳에서 '한끼'로 희망을 나누다

2003년부터 노숙인에 무료급식 민들레국수집 서영남 대표
16년 전 전재산으로 연 노숙인 밥집이 하루 300명 다녀가는 '민들레 공동체'로 성장
한때 도움받던 사람들 함께 식사 준비하고 쉼터·진료소 생활 공유하며 든든한 '가족'으로
2014년 필리핀 빈민가에 밥집 열어… "한손쯤은 남을 위해 비워보세요, 곧 행복이 채워질겁니다"

서영남 민들레국수집 대표(오른쪽)가 노숙인들에게 밥과 반찬을 나눠주고 있다. 노숙인들은 이곳에서 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민들레는 문 주변에 흐드러지게 피는 꽃이다. 꽃은 길 모퉁이, 사람 사는 곁 '가장 낮은 곳'에 핀다. '민들레국수집'은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 소외된 사람들 곁에 있다. 지난 1월 말, 노숙인을 위한 무료 밥집 민들레국수집을 찾았다. 동인천역 광장을 지나 완만한 고갯길을 올랐다. 언덕배기 끝자락 작은 상가, 변변한 간판도 없었다. 베로니카(민들레국수집 대표의 아내, 세례명)가 문을 열어 두리번거리는 기자를 반겼다. "여기예요. 민들레국수집". 국수집 안은 따뜻했다. 갓 지은 밥냄새가 났다. 이곳 주인장은 서영남씨(65)다. 민들레국수집, 인천시 화수동 달동네 고갯길에 있는 작은 '밥집'이다.

■"사랑받으면 조금씩 변하지요"

이날 오전 노숙인 송모씨(62)가 민들레국수집에서 밥을 먹고 나왔다. 하루 두 끼를 먹는데, 첫 끼니다. 송씨는 서울역, 남대문지하도 등에서 10년 넘게 노숙을 하고 있다. 외환위기 때 하던 장사가 망했다. 가족과도 헤어졌다. 돈을 내밀며 도와주겠다고 다가온 낯선 사람의 꾐에 속아 신용불량자가 됐다. 송씨는 침낭을 매단 낡은 배낭을 메고 있었다. 추운 겨울 없어서는 안될 침낭은 민들레국수집 서 대표가 줬다고 한다.

"서울역에서 전철을 타고 1시간 걸려 밥먹으러 온 겁니다. 몇 곳에 무료 급식소가 있는데 급식 인원이 줄어 배불리 먹지를 못해요. 이곳에선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요."

민들레국수집은 10여명이 앉을 만한 식당이다. 목요일, 금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이 열려 있다. 하루 150~300명의 노숙인들이 찾는다. 자원봉사자와 한때 노숙인으로 이곳에서 도움을 받았던 이들이 함께 밥과 반찬을 준비한다. 모두가 '민들레 가족'이다.

"밥먹을 때마저 줄을 세우며 경쟁하게 한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지요. 선착순이 아니라 꼴찌부터 식사를 하도록 하면 더 많은 사람이 밥을 드실 수 있어요. 노숙인들에게 충분히 식사를 하도록 하면 더 욕심내지 않아요. 밥을 무료로 준다는 이유로 종교를 강요하거나 하는 조건을 달아도 안됩니다."

■"하루하루가 기적입니다"

서 대표가 민들레국수집을 처음 연 것은 2003년 4월 1일. 그의 전 재산 300만원으로 4~5명 앉을 식탁 하나를 놓고 노숙인을 위한 무료 밥집을 열었다. 지금의 민들레국수집 바로 옆이다. 처음엔 국수를 삶았다. 며칠씩 굶은 노숙인들이 국수보다 밥을 원했다. 서 대표는 하루 7~8시간씩 혼자서 밥을 짓고 반찬을 해 노숙인들에게 줬다. 매일 60~70명이 찾아왔다. 서 대표도 가난했다.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여덟살 때 부친을 잃고, 스무세살 때 수도회에 입회했다. 25년이 되던 2000년 그는 수도복을 벗고, 가난한 사람들 곁으로 나왔다. 가톨릭 수사 때부터 20여년 해왔던 교도소 장기수를 돕는 일(교정 사목)은 지금도 하고 있다.

"민들레국수집에 오는 이들은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어쩔 줄 모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삶에 지쳐 희망마저 버렸던 외톨이였어요. 사랑을 체험하면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나보다 귀한 남이 있다는 것을, 돈보다 귀한 것이 세상에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16년 전 처음 핀 '민들레'는 작았다. 작은 꽃씨 하나가 더 많은 나눔이 됐다. 이곳에서 밥을 먹었던 노숙인들이 다시 찾아왔다. 보답하겠다는 마음으로 봉사를 자청했다. 다문화가족도 있었다. 더 어려운 이웃에 써달라며 힘들게 번 돈을 내밀었다. 가난한 이들은 차별없이 모두 '민들레 식구'가 됐다. 작고 느슨한 공동체를 이뤘다. 국수집 고갯길 아래에 노숙인의 쉼터이자 옷가지와 건강을 챙겨주는 민들레희망센터, 민들레진료소, 민들레가게를 열었다. 근방 몇 곳에 노숙인들이 살 수 있도록 월셋방도 내줬다.

서영남 민들레국수집 대표(앞줄 왼쪽)가 민들레 공동체 가족들과 활짝 웃고 있다. 서 대표 옆은 그의 아내 베로니카(세례명)다. 사진=박범준 기자
■필리핀에 핀 민들레 꽃

민들레는 필리핀의 가장 가난한 곳에도 피었다. 지난 2014년 서 대표는 칼로오칸시티의 라 로마 가톨릭 공동묘지 빈민촌 등 3곳의 빈민가에 민들레국수집을 열었다. 공부방도 만들었다. 국수집은 가난한 아이들에게 밥과 장학금을 주고, 가족들의 자립을 돕고 있다.

"이곳에서 아이들만 밥을 먹는 게 아니라 가족들도 함께 먹을 수 있도록 했어요. 그러면 8~9명이 넘는 가족들이 전부 다 밥을 먹으러 오는 일도 있어요. 그때는 그 집에 쌀이 떨어진 겁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체면이 있어요. 그들이 마음 상하지 않도록 해줘야 합니다"

■"나는 작은 언덕입니다"

민들레국수집 16년, 마음 고생도 많았다. 서 대표의 선행이 TV(인간극장)에 방송됐고, 상(2011년 국민훈장 석류장 등)도 받았다. 후원자는 많아졌다. 하지만 없던 오해가 생겼다. 시기도 있었다. 기대하지 않은 정부후원금을 받았다가 이를 모두 포기하기도 했다. 천주교 교구 명의로 건물을 매입해 노숙인 쉼터(민들레희망지원센터)를 열었는데, 작은 오해가 쌓이면서 건물을 교구에 돌려준 일이다. 서 대표는 처음 시작할 때처럼 '비인가(비제도)' 민들레국수집으로 남기로 하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이다. 또 몇해 전엔 정부가 공장 부지를 마련해줄테니 국수공장 협동조합을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서 대표는 "그때는 마음이 약간 흔들렸다"고 했다. " '돈을 좇다가는 사람을 잃는다. 나 자신이 사람답게 사는 것', 초심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서 대표는 이후 방송 출연도, 인터뷰도 사양했다. '민들레'는 흔들리면서 더 깊게 뿌리를 내렸다.

"이 세상에 나누지 못할 만큼의 가난은 없습니다. 행복을 위해 양손 가득 많은 것을 움켜쥘 수도 있지요. 하지만 한 손 쯤은 남을 위해 비울 줄도 알아야 합니다. 나누고 난 빈손엔 더 큰 행복이 채워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크고 따뜻한 손은 빈손입니다.
"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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