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 비무장지대 ‘신뢰의 길’ 탄생

김주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2.25 17:31

수정 2019.02.25 17:31

[특별기고] 비무장지대 ‘신뢰의 길’ 탄생

지난해 9월 19일 남북 국방장관이 서명한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합의서'의 근간에는 적대행위 중지와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지대화 등을 위한 정전협정의 정신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남북이 DMZ 안의 모든 감시초소(GP)를 철수하기로 합의한 것은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과도하게 배치된 군사력을 확실히 분리함으로써 접경지역의 우발적 무력충돌 가능성을 감소시키고, DMZ를 실질적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한 획기적인 조치로 평가할 수 있다.

남북은 양쪽 GP 거리가 1㎞ 이내인 각각 11개 GP를 시범적으로 철수·철거하기로 하고 11월 1일부터 본격적인 철수작업을 시작했다. 수십년 동안 철옹성처럼 웅크리고 있던 GP들을 철수하고 불능화하는 작업은 불과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남북이 작은 신뢰를 바탕으로 시작한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 구축을 위한 약속 앞에 대결의 상징이 재빠르게 사라져 간 것이다.

곧이어 남북 검증단은 상대측 검증 대상 GP를 방문해 '현장검증'(On-Site Inspection) 방식으로 서로의 이행조치를 여과 없이 확인할 수 있었다.


남북은 이번 현장검증을 위해 각자의 검증단이 이동할 수 있도록 비무장지대 내에 '오솔길'로 이름 붙여진 11개의 통로를 신설했다.

남북 군인들이 군사분계선을 관통하는 연결지점들을 공동으로 선정하고, 각자의 GP에서 연결지점에 이르는 통로를 개설했다. 수십년 동안 서로 총부리를 겨눈 채 코앞에서 대치한 남북 군인들이 오솔길을 내 상대방 진지를 방문한 것은 하나의 작은 오솔길 낸 것을 뛰어넘었다. 역사적 사건이었다.

우리 군의 발표에 따르면 이번 남북 간 상호 현장검증은 우호적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고, 북측은 남측 검증단의 다양한 요구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며 검증에 협조했다고 한다.

남측 군은 이번 검증의 주요 과정을 사진 및 동영상으로 모두 기록했고, 이 과정에서 북측의 어떤 제지나 이의 제기도 없었다고 한다. 과거 북한이 금강산 관광객들의 카메라 속 사진들까지 일일이 확인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북측이 이번 GP 시범철수와 검증에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임했는지를 알 수 있다.

검증 이후 군은 현장검증 결과를 토대로 면밀히 분석한 후 그 결과를 공개했다.

북측 GP 내 모든 병력과 장비는 완전히 철수됐고, 지상시설뿐만 아니라 지하시설까지 모두 폭파되거나 매몰돼 불능화됐다. 북측 또한 남측 GP들이 완전히 파괴됐다는 현장 평가를 내렸다.

DMZ를 평화지대화하기 위해 시범적으로 실시한 GP 철수와 검증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남북은 군사적 긴장완화 및 신뢰 구축을 위한 첫걸음을 힘차게 내디뎠다. 11개 GP 곳곳에는 상호 공동검증을 위해 사용했던 '오솔길' 중 하나 하나가 새롭게 자리 잡았다. 지금까지 존재하던 군사적 갈등과 긴장의 길 사이에 '신뢰의 길'이 11개 새롭게 놓인 것이다.

비록 작고 굽은 길이지만 이 길을 오가며 남북은 불과 수백m 떨어져 있던 GP들이 완전히 파괴된 것을 상호 확인했다.
오솔길을 오간 것은 남북 검증단만이 아니었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로운 한반도의 디딤돌이 될 작지만 소중한 신뢰가 그 길 위로 오갔다.
황금돼지 해인 올해에는 이 오솔길이 군사적 신뢰의 길, 남북을 잇는 대로가 돼 DMZ가 명실상부한 평화지대가 되길 기대한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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