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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90년대생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2.26 16:34

수정 2019.02.26 17:55

한 기업의 임원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젊은 신입사원에게 책 한 권을 건넨다. "이 책 퇴근 후에 한번 읽어봐. 많은 도움이 될거야." 이때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답하면 적어도 90년대생은 아니다. 이럴 때 90년대생은 십중팔구 이렇게 대답한단다. "왜요? 근무시간에 읽으면 안돼요?"

좀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90년대생, 즉 20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로 이만한 것도 없다. '90년생이 온다'의 저자 임홍택씨(임씨는 82년생이다)에 따르면 90년대생들은 회사와 나의 경계가 분명하다.
회사는 이제 더 이상 '가족'이 아니다. 일한 만큼 돈을 받는 쿨한 관계, 딱 그 정도다. 그러다보니 과거 선배 세대들이 보였던 회사에 대한 충성도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열심히 일해서 남들보다 빨리 승진해야겠다는 생각도 상대적으로 덜하다. 그들의 목표는 '원대한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행복'을 맘껏 누리는 것이다. 그들을 '9급 공무원 세대'라고 부르는 이유다.

하지만 이들은 솔직하고 정직하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직한 시스템을 부단히 요구한다는 점에서다.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부분에 대해 선배들은 더러워도 꾹 참고 넘어가는 일이 많았지만 이들은 할 말은 하는 편이다. 과거처럼 거대한 이념이나 사회조직을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하는 것도 아니다. 바로 내 곁에서 일어나는 불공정하고 불투명한 일에 개인적으로 맞선다. 구직자나 소비자 입장에서 기업에 투명한 정보를 요구하고, 회사에 대한 불만을 직설적으로 토로하는 경우가 제법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지 모른다.

90년대생들은 다소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측면도 있다.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세상에서 개인의 노력이 충분히 보상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일찍 깨달은 세대다. '헬조선' '혐생(嫌生)'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같은 말들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이러다보니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 '행복해지는 연습을 해요' 같은 나를 위로하는 에세이가 그들 사이에서 인기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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