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아들은 도움을 요청했는데…" 극단적 선택한 최 일병 어머니의 절규

오은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3.03 12:59

수정 2019.03.03 15:51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 받는다' 선택했지만... 
복무적응도 검사 '관심' 판정 이후 수시로 면담…"자살징후 없어"
2차 수사 결과 "언어폭력·잦은 야근으로 힘들어 해"
전문가 "관리체계 작동 안 돼…업무 전가 여부도 살펴야"
지난해 11월 26일 충남 서산 공군 20전투비행단 소속 최모 일병(23)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군 수사결과소속된 간부의 지속적인 질책과 언어폭력, 잦은 야근 강요 등이 원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최 일병은 복무 적합도 검사 등으로 어려움을 호소했지만 적절한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유족은 전했다. 사진은 최 일병이 A간부에 대해 어머니와 통화한 내용 /사진=오은선 기자
지난해 11월 26일 충남 서산 공군 20전투비행단 소속 최모 일병(23)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군 수사결과소속된 간부의 지속적인 질책과 언어폭력, 잦은 야근 강요 등이 원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최 일병은 복무 적합도 검사 등으로 어려움을 호소했지만 적절한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유족은 전했다.
사진은 최 일병이 A간부에 대해 어머니와 통화한 내용 /사진=오은선 기자

"아들은 언어폭력과 과도한 업무로 정신적 학대를 받은게 분명해요. 마지막으로 도움을 요청했는데… 제가 미리 알아채지 못한게 가장 미안해요.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가해자들에 대한 강한 처벌과 시스템 개선을 강력히 원합니다"
엄마는 울지 않았다. 차분하게 아들의 이야기를 풀어 내려갔다. 파르르 떨리는 얼굴로 간간히 깊은 한숨을 쉬며 답답함을 토로할 뿐이었다.

지난해 11월 26일, 충남의 한 공군부대에서 복무 중이던 최모 일병(23)이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 있던 태블릿 PC에선 "삶의 무게를 견딜 수가 없다"는 내용의 짧은 메모가 발견됐다.

■'견디기 힘들다' 선택했지만…
3일 군 헌병대의 최 일병 사망 관련 2차 수사결과에 따르면 최 일병은 지난해 8월 7일 부대에서 실시한 복무 적합도 검사에서 '관심' 판정을 받았다. 앞서 7월 7일에 실시된 면담에서 '업무에서 자신감이 넘치고 주변 동료와 원만한 관계를 보인다'는 결과를 받은지 한 달 만이었다. 원칙에 따라 부대 주임원사가 수시로 면담을 진행했고, 최 일병은 잦은 야근에 대해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군 측은 "상담 당시만해도 자살 징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후 11월 10일 실시된 복무적응도 검사 결과 최 일병은 '양호'로 판정 받았다. 수사결과 발표 당시 공군은 "군 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에 대한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고 돼 있으나 면담은 미실시됐다"고 발표했다.

당시 최 일병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후반기 스트레스 평정검사 결과 그는 '견디기 힘들 정도의 강한 스트레스를 받는다'에 2개 항목,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에 6개 항목을 선택했다.

해당 결과는 11월 22일 소속 부대에 전달됐다. 다음날인 23일 부서장 등이 자료를 확인했지만 '부대 일정 업무로' 상담은 실시되지 못했고, 같은 달 26일 최 일병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 일병 어머니는 "아들이 통화로 '요즘 사무실에 있기만해도 스트레스를 엄청 많이 받는다. 스트레스 주요(원인) 1등은 그분이야'라며 특정 인물을 언급했다"며 "복무적응도 검사 결과가 '도와달라'는 아들의 마지막 외침이었지만 그 결과는 아들에게 스트레스를 줬던 간부들에게 가장 먼저 전달됐고 적절한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언어폭력·잦은 야근이 이유"
2차 수사결과 발표에서 군은 "소속된 간부의 지속적인 질책과 언어폭력, 잦은 야근 강요 등 업무 중압감 등으로 스스로 목 매 숨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최 일병은 주변 친구들과 동료, 부모에게 사망 약 3개월 전부터 "A간부가 너무 뭐라고 하는데 괴롭다", "B간부가 툭하면 야근을 시킨다. '싫다'는 의사표시를 하면 '너는 거부권이 없다'고 말하는데 진짜 죽고싶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최 일병과 친구가 휴가기간 나눈 대화내용 /사진=최 일병 유가족 제공
최 일병과 친구가 휴가기간 나눈 대화내용 /사진=최 일병 유가족 제공

수사결과에 따르면 새로 부임한 A간부는 최 일병이 실수할 때마다 본인 책상 앞에 5분 가량 세워두고 "이것도 똑바로 못하냐, 너 또 찐빠(제대로 되지 않은 일이나 사물·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냐, 잘못했으니 휴가도 나가지 말아라"는 등 모욕적인 발언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군 측은 "검사 결과로 인한 상담은 절차대로 진행됐으나 결과적으로 사건이 발생한 점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하지만 현실적으로 부대가 한 명의 병사만 바라보고 있을 순 없어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는 이번 사건을 군대 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판단했다. 군 법무관 출신의 김정민 변호사는 "해·공군은 간부 중심으로 업무가 돌아가기 때문에 관리체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그러나 병사가 극심한 부담감을 느낄 정도로 업무가 과중했다면 간부들의 직권남용으로 인한 업무 전가 여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사건은 군 검찰로 넘어갔다. 유족은 아들의 동료 병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특정된 가해자 3명을 군 검찰에 고소했다.
최 일병 어머니는 "지난달 25일 순직처리 됐다고 부대에서 연락이 왔지만 아직 아들 시신을 화장도 못한 상태"라며 "더 이상 부대 내에서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아들의 억울함이 다 풀릴 때까지 보내지 못할 것 같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onsunn@fnnews.com 오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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