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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선임기자의 경제노트] 수소경제 올인한 정부… 수소차 키우려다 전기차 잡을라

김두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3.03 17:11

수정 2019.03.04 11:44

김두일 정책사회 선임기자
美에 밀리고 中에 치이고 전기차산업 ‘넛크래커’ 우려
내우외환 겹친 전기차 산업..정부, 규제풀고 지원 팔걷어야
[fn선임기자의 경제노트] 수소경제 올인한 정부… 수소차 키우려다 전기차 잡을라

정부가 지난 1월 수소연료전지차(수소차) 산업 육성에 초점을 맞춘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내놓으면서 관련 정책의 방향과 실현성 여부에 대한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오는 2040년까지 수소차 시장을 620만대 규모로 키우겠다는 게 골자다. 수소차 보급 활성화를 위해 현재 14곳인 수소충전소를 이 기간 1200개로 늘리기로 했다.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은 수소경제 글로벌 주도권 확보와 신성장동력 창출, 대기질 개선 등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fn선임기자의 경제노트] 수소경제 올인한 정부… 수소차 키우려다 전기차 잡을라

제러미 리프킨은 지난 2003년 발간한 '수소혁명'에서 화석연료의 고갈에 따른 대체재로 수소를 지목하며 '수소경제'가 도래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 이유로 화석연료 중 가장 먼저 고갈될 것으로 보이는 석유를 비롯한 다른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제 막 제자리를 잡아가는 전기차 산업을 소홀히 한 채 수소차에 정책의 무게중심을 실을 경우 자칫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잃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수소차는 아직 인프라가 미비한 데다 제대로 된 관련 기술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여서 정책의 효과를 내기가 역부족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수소 생산부터 운송·저장·공급·이용 등 모든 과정에서 환경문제를 일으키고 비용도 크게 증가한다. 수소는 물을 전기분해하거나 천연가스에서 추출한다. 물을 전기분해하려면 전기가 필요하고 천연가스에서 추출할 경우 추출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킨다.

에너지 및 자동차 분야 세계적 석학인 미국의 토니세바는 "현재의 기술 수준에서 수소경제는 전기자동차나 신재생인프라에 비해 에너지를 3∼6배 더 쓰고, 가솔린보다도 훨씬 많은 양의 물을 사용한다"고 지적했다. 천연가스나 물과 같은 자원으로부터 수소를 뽑아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태양·석탄·천연가스, 우라늄과 같은 1차 에너지자원이 낭비되고 전력소비도 커서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물에서 수소를 추출하는 과정에 드는 전기로 배터리에 충전해 전기자동차를 굴리는 게 더 낫다고 주장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정부가 수소차 산업 육성에 치중할 경우 그동안 키워온 전기차 산업은 기술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잃고,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따라서 수소차를 전기차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 개념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기차 산업을 소홀히 해서는 자칫 자동차 산업 전반의 퇴조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 밀리고 중국에 치이고 '넛크래커 우려

이게 아니라도 우리나라 전기차 산업은 위기를 맞고 있다. 기술력이 한발 앞선 미국에 밀리고 가격을 앞세운 중국에 치이는 상황이다. 특히 중국은 우리에게 훨씬 위협적이다. 중국은 2016년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200만대를 생산했을 때 65만대를 소비했다. 미국( 56만대)을 뛰어넘었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의 기술굴기, 이른바 '제조 2025'와 함께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세계 전기차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전기차는 중국 정부의 제조 2025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중국은 오는 2020년까지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등 친환경자동차 판매량을 연 200만대로 확대할 계획이다. 올해는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최소한 1개 이상의 전기차 모델을 갖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전기버스 산업에 전폭적 지원을 하고 있다. 지난 2016년 전기버스 판매가격의 45%에 달하는 보조금을 전기버스 생산업체에 지급, 중국시장에서만 13만대를 판매했다. 우리나라가 같은 해 보조금 지급실적이 100대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가히 전폭적이다.

국내 시장에도 중국 전기차의 공세를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인 하이거가 서울에 진입했다. 서울시로부터 전기시내버스 시범사업자로 선정되면서다. 하이거는 서울시가 시범으로 운행하는 29대 중 10대 공급권을 따냈다. 그것도 쟁쟁한 국내 전기차 생산업체 대부분을 따돌리면서다. 서울 전기시내버스 29대 중 현대자동차가 14대, 토종 중소업체인 에디슨모터스가 5대를 굴린다. 하이거는 나아가 이번 시범사업에서 우선공급대상 업체로 선정됨에 따라 현대차, 에디슨모터스와 함께 국내 시장 진출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

서울시는 이번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오는 2030년까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시내버스 7400여대 모두를 전기시내버스 등 친환경차로 교체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중국의 전기차도 서울시내에 전기차 시내버스를 공급할 수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이대로 가다간 반도체 산업과 함께 자동차산업도 "미국과 유럽에 밀리고, 멕시코·인도·중국에 잠식당하는 넛 크래커 현상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한다. 따라서 정상적인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전기차 등 친환경차에 대한 재정적·제도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토종 스타트업 에디슨모터스가 오는 5월 선보일 예정인 전기버스 '스마트 11H'.
토종 스타트업 에디슨모터스가 오는 5월 선보일 예정인 전기버스 '스마트 11H'.

■규제 샌드박스 시급…中企 역차별도 손봐야

중국은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인 스타트업)의 요람으로 꼽힌다. 1주일에 2개꼴로 유니콘 기업이 탄생하면서다. 3일 KOTRA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중국 내 유니콘기업은 162곳에 달한다. 세계적 IT기업으로 성장한 바이두, 알리바바, 샤오미, 텐센트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기업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유니콘 기업을 발굴·육성하고 있다. 중국에서 이처럼 유니콘기업이 빠른 속도로 많이 배출되는 것은 중국 정부의 지원에 힘입은 것이다. 바로 '선허용·후보완' 정책이다. 신사업에는 5년간 각종 제약을 두지 않는다. 그리고 나서 문제가 발생하면 정책을 보완해 문제를 해결하고 육성정책을 뒷받침한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간다. 정부와 국회에서 기업의 발목을 못 잡아 안달이 난 것 같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1500개 기업 관련 법안 중 800개 이상이 규제법안"이라며 정부와 국회의 기업정책을 비판했다.

미래성장동력으로 꼽히는 전기차 시장만 해도 그렇다. 한 중견 전기차 업체 대표는 "전기자동차 배터리팩 낙하시험 인증 때 세계기준은 1.2∼2m인 데 비해 우리는 4.9m로 그 기준이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한다. 그는 "정부가 나서서 비용을 상승시키고 국제경제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며 "규제를 풀어 신사업을 육성하는 '샌드박스'가 아니라 '모래지옥'을 양산시킨다"고 꼬집었다. 그는 "자동차 인증기준인 자가인증제도 외국기업·대기업에 절대적으로 유리해 국내 중소업체는 심한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가인증제도는 정부가 정한 기준에 따라 제작업체가 자율적으로 제작, 자체적 인증 과정을 거쳐 판매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가인증제는 '2500대 이상이거나 동일한 형식의 자동차를 연간 500대 이상 제작·조립하는 경우'에만 적용돼 기술력이 뛰어난 스타트업이지만 재정적 이유 등으로 이 요건을 갖추지 못하는 중소기업이 불이익을 받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배터리팩 하나만 더 추가해도 인증절차를 거쳐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한다는 게 중소 전기차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중소 전기차업체들은 독점적 부품 유통구조인 '전속거래'(수직계열화) 문제도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완성차 업체들이 주도하는 하청구조 속에서 경쟁력 있는 부품을 만들기 어렵고, 만들어도 타사에 팔 수 없는 독점적 전속거래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독일의 ZF프리드리하펜이나 보쉬(BOSCH) 같은 부품업체의 탄생이 요원하고, 결과적으로 자동차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는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부품 전속거래 유통구조 환경에서는 후발 자동차 생산업체는 비용이 적게 드는 국산 부품을 공급받기 어려워 독일이나 일본 등지로부터 들여와야 하기 때문에 비용상승과 함께 가격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dikim@fnnews.com 김두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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