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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 경제 이미 위기?… ECB, 계획 엎고 다시 돈 푼다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3.08 16:55

수정 2019.03.08 17:31

보호주의 등 우려 정책궤도 선회..금리인상 시기 올해말까지 미뤄
9월엔 2년만기 장기대출 재시작, 美 뉴욕 등 세계증시 일제히 하락
유로존 경제 이미 위기?… ECB, 계획 엎고 다시 돈 푼다


유럽중앙은행(ECB)이 7일(현지시간) 경기부양으로 궤도를 틀었다. 적어도 올해 말까지는 금리를 동결하고, 9월부터는 은행들을 통한 유동성 투입에도 나서기로 했다.

지난해 12월 채권매입프로그램을 서서히 줄인다고 발표한 지 석달도 채 안 돼 통화완화로 다시 방향을 바꾼 것이다.

시장 예상보다도 파격적인 ECB의 통화완화 대응은 유로존(유로 사용 19개국) 경제가 생각보다 심각한 역풍에 직면해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경기둔화 우려가 깊어지면서 위험자산인 주식은 하락했고, 안전자산 채권 값이 뛰었다.

■ 3번째 장기대출 프로그램(TLTRO III)

월스트리트저널(WSJ)과 CNBC,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들에 따르면 ECB는 이날 통화정책 결정기구인 집행이사회에서 기존의 '양적완화(QE) 축소'라는 정책방향을 완전히 틀었다.


ECB는 지난해 12월 2조6000억유로 규모의 채권매입 프로그램을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을 재투자하지 않는 방식으로 서서히 줄이기 시작했고, 올 하반기에는 첫번째 금리인상에 나선다는 계획을 제시했지만 이날 이를 완전히 뒤집었다.

추가 금리인하 얘기는 없었지만 우선 첫번째 금리인상 시기를 뒤로 미뤘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집행이사회 뒤 기자회견에서 적어도 올 연말까지는 금리인상이 없다면서 이날 통화정책 변경은 '만장일치'로 결정됐다고 밝혔다.

ECB는 또 9월부터 각 2년만기인 장기대출프로그램(TLTRO)을 다시 시작한다고 밝혔다. 2021년 3월까지 지속된다.

TLTRO는 ECB가 유로존 은행들에 낮은 금리로 장기에 걸쳐 돈을 꿔주는 프로그램으로 은행들은 이 돈을 기업이나 소비자들에게 싼 금리로 공급하게 된다. 유동성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책이다. 2014년 이후 3번째다.

드라기 총재는 경기침체 가능성은 매우 낮다면서도 유로존 경제 전반에 위험이 만연해 있다고 정책궤도 선회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지정학적 요인들, 보호주의 위협, 신흥시장 취약성과 관련한 지속적인 불확실성들이 경제심리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거의 모두를 놀라게 해"

ECB의 이날 정책방향 선회는 유로존 경제에 대한 평가가 이전과 달라졌음을 뜻한다. 이전까지는 우려 속에서도 성장에 무게가 실린데 반해 이날 ECB는 위험성에 방점을 찍었다.

올해 유로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지난해 12월 전망치 1.7%를 크게 밑도는 1.1%에 그칠 것으로 하향조정했고, 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은 1.6%에서 1.2%로 전망치를 낮춰 잡았다. '2%에 근접'이라는 인플레이션 정책 목표치에서 더 멀어졌다.

ECB는 분기별로 경제전망을 발표한다. 지난해 12월 이후 이날 올들어 첫번째 전망이 발표됐다.

통화정책 고삐를 느슨하게 하는 선에서 이날은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했던 시장은 ECB의 선제적 대응을 환영하면서도 그만큼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우려에 휩싸이고 있다.

ING 은행의 카르스텐 브젠스키 이코노미스트는 분석보고서에서 "ECB가 (위험한 결과를 부를 수도 있는) 부적절한 긴축을 피하려 새로운 일련의 정책대응을 발표해 거의 모두를 놀라게 했다"고 말했다.

■ "시장, 경제둔화 심각성 깨달았다"

시장은 ECB의 선제적 대응에는 찬사를 보냈지만 세계 경제 둔화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점 때문에 크게 출렁였다.

독일 닥스30지수, 영국 FTSE 100 지수, 프랑스 CAC 40 지수 등 유럽 3대지수가 0.5% 안팎의 하락세를 기록했다. 뉴욕증시도 다우지수가 200포인트 넘게 하락하는 등 1% 안팎의 내림세를 보였다. 유로도 하락했다. ECB 발표로 하락했던 유로는 오후 들어 드라기 총재 기자회견 뒤 하락 폭이 더 커졌다. 유로는 이날 미국 달러에 대해 0.5% 하락한 유로당 1.1245달러에 거래됐다.


안전자산인 채권은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수익률이 떨어졌다. 이탈리아 10년만기 국채 수익률은 2.647%에서 2.586%로 내렸고, 독일 국채(분트) 10년물짜리도 수익률이 0.12%에서 0.09%로 떨어졌다.
미 10년만기 국채 수익률 역시 이날 0.04%포인트 내렸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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