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서]

‘부민관’을 아십니까


1990년 초 TV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여명의 눈동자'라는 드라마는 일제강점기부터 6·25전쟁 때까지 격동의 시대에 서로 엇갈린 운명을 살았던 세 젊은이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원작 소설부터 일단 유명했지만 파격적 호화캐스팅에 당시 기준으로 수위 높은 연출 덕분에 당시 고등학생들에게 특히 인기를 끌었다.

작중 주인공 중 한명인 하림이라는 인물이 미군 OSS 요원들과 친일 집회가 열리는 '부민관'이라는 시설을 폭파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극중에서는 독립운동의 주요한 변곡점 중 하나가 되는 사건으로 그리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 중 3·1 만세운동이나 안중근 의사, 유관순 열사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그러나 부민관 의거를 아는 사람을 찾기는 힘들다.

부민관은 일제강점기 지금의 세종문화회관처럼 시민회관 역할을 하던 곳이다. 1945년 광복을 얼마 남기지 않았을 시점에 이곳에서 '아세아민족분격대회'가 열리는데, 친일파가 기획한 태평양전쟁 참전 독려행사였다. 당시 갓 스물을 넘긴 조선청년 조문기, 유만수, 강윤국, 우동학, 권준 등은 행사에 참석한 친일파들을 제거하기 위해 부민관 무대에 사제 폭탄을 설치한다. 행사 당일 계획보다 폭탄이 빨리 터지는 바람에 의거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광복 직전까지도 일제에 대한 저항을 굽히지 않았던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이다.

부민관은 지금도 원형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장소다. 현재 서울시청 맞은편에 위치한 서울시의회 건물이 바로 부민관이다. 광복 이후 부민관은 초대 국회의사당이었고, 후에 세종문화회관 별관이었다가 지방자치 시대를 맞아 시의회 의사당이 됐다. 본래 '부민', 즉 경성부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졌으니 원래의 자리를 찾은 셈이다.

이 건물은 2002년 5월 31일 등록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됐다. 내부는 일부 리모델링을 거쳤지만 외관은 독립운동이 한창 벌어지던 그 시절의 모습을 대부분 유지하고 있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다. 연초부터 정부와 지자체들은 저마다 독립운동 관련 행사를 마련했다. 그때의 기억을 잊지 않고 민족을 위해 싸웠던 이름들을 기억하자는 취지다.

그런데 지자체들이 마련한 행사들은 대부분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는 몇몇 독립운동가와 그들의 활동에만 집중돼 있다. 부민관처럼 덜 알려져 있거나, 점점 잊혀가는 기록들을 다시 조명하는 행사들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 아쉽다.

그 시절 벌어졌던 항일투쟁에 가볍고 무거움이 있을 수는 없다. 모두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기 한 목숨을 희생했던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목받지 못한 많은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이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얼마 전 한 서울시 관계자가 "독립운동가들은 대부분 재산을 모두 독립자금으로 써버려 가정을 챙기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이 때문에 독립유공자 후손들 중에는 지금까지도 형편이 넉넉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시의회는 숨어 있던 부민관의 기억들을 보존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최근 홍보영상을 제작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다.
조금만 찾아보면 알려지지 않은 독립지사와 의거 사례는 차고 넘친다. 100주년을 맞아 행사만 요란하게 할 게 아니다. 그간 주목받지 못하고 잊혀진 독립운동 기록들을 발굴해 다시 세상에 알리는 것도 3·1운동의 의미를 진정 되새기는 길이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정책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