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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기술보다 비즈니스 모델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3.27 17:05

수정 2019.03.27 17:05

[fn논단] 기술보다 비즈니스 모델


4차 산업혁명은 건설생산방식도 바꾸고 있다. 건설현장의 자동화와 기계화, 건설프로세스의 디지털 전환이 진전되고 있으며 현장 시공을 대신한 공장제작 및 조립방식도 확산되고 있다. 공장제작 및 조립방식 확산과 관련한 글로벌 트렌드를 파악하고자 3월 중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컨벤션에 다녀왔다.

현지 전문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유니콘 기업이 있었다. 2015년 창업한 스타트업으로 2년 만에 기업가치가 10억달러를 넘어섰고, 창업 3년 만에 11억달러에 달하는 투자를 유치했으며 700개 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직원 수도 약 5000명에 이른다고 했다. '설계-공장제작-현장조립 및 시공'에 이르는 전체 생산과정을 수직적으로 통합해 단독주택 등을 공급하고 있는데, 건설생산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비전도 제시하고 있다.
'건설업계의 테슬라'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미국 현지에서 만난 전문가 중에는 우려 섞인 평가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투자는 많이 받았지만 기대에 비해 성과가 크지 않다든가, 독보적 기술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는 지적이다. 당연한 지적이기도 하다. 창업 3년 만에 성과를 운운하기는 부족하다. 특히 공장제작 및 조립방식으로 단독주택을 건설하는데 남과 차별화된, 독보적 기술을 기대할 수 있을까.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은 혁신적이다. 토목이나 건축전문가들이 기술에 주목한다면, 경영학자들은 비즈니스 모델을 더 눈여겨볼 것이다. 공장제작 및 조립방식 활용을 확대하고, 설계부터 시작되는 생산과정을 수직적으로 통합했다는 것이 그 회사의 차별화 요소다. 사실 기술보다 비즈니스 모델이 회사의 성장을 이끌어 온 원동력으로 보인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는 대개 기술에서 출발한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을 예로 든다. 하지만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통한 기하급수적인 산업과 기업의 성장도 4차 산업혁명의 특징 중 하나다. 4차 산업혁명의 비즈니스 모델인 '규모의 수요경제'는 플랫폼 비즈니스를 설명하는 모델이다. 플랫폼을 통해 수십억명의 수요자가 연결돼 있기 때문에 이들 잠재적 고객을 대상으로 카풀, 숙박공유, 금융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관련 시장과 기업의 급성장이 이뤄진 것이다.

우리가 4차 산업혁명에 뒤처져 있는 이유는 기술 때문만이 아니다. 분야별 기술은 우리가 더 앞서 있는 영역도 많다. 하지만 건설산업에서 비즈니스 모델은 아직 별다른 혁신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적절한 비즈니스 모델이 형성되지 못한 핵심 이유 중 하나는 정부 규제다. 시대착오적인 갈라파고스 규제로 인해 선진국이나 중국 같은 신흥국에서는 가능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공장제작 및 조립방식이 우리 건설산업에서 활성화되기 어려운 것도 같은 이유다.
건설업체가 건축설계를 할 수 없게 규제하고 있기 때문에 '설계-공장제작-현장조립 및 시공'의 수직적 통합은 불가능하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들은 대부분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통해 성장했다.
우리 건설업체들의 비즈니스 모델 혁신이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적 환경 정비도 필요하다.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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