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성폭행 피해자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 위로하는 사회가 되어야"

윤홍집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3.31 09:59

수정 2019.04.01 17:40

[성폭행 피해자의 입은 누가 막았나? ②]
서울해바라기센터 박혜영 부소장·정명신 팀장 인터뷰
"너 왜 신고 안 했어? 피해자에겐 비난처럼 느껴지는 물음"
"사회가 날 믿어주지 않을 것 같다는 불신…신고 주저하게 만들어"
"성폭력 피해, 주변에 알리기보단 센터에 방문하는 게 우선"
"노인 성폭행 심각한 수준…수치심에 신고 못해"
"왜 8년 동안 참았을까요? 피해자가 더 이상하네요"

위 글은 '한집에 살던 처제를 8년간 90여 차례에 걸쳐 성폭행한 40대' 기사의 댓글이다.

댓글엔 가해자에 대한 비난이 주를 이뤘지만 피해자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눈에 띄었다. 다년간 성폭행을 당하고 신고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에 동향 2018'에 따르면 2016년 발생한 성범죄는 2만9357건이다. 인구 10만명당 56.8건으로, 하루에 80.4건, 시간당 3.4 꼴로 성범죄가 발생했다. 10년 전인 2007년(1만4000건)에 비하면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이토록 높은 성범죄율에도 불구하고 현업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은 실제 성폭행 피해자가 통계보다 더 많을 거라고 추정하고 있다.

서울해바라기센터 박혜영 부소장과 정명신 팀장은 피해자가 성폭력을 당하고도 피해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해야 하는 사회 분위기를 지적하며 성폭력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서울해바라기센터 박혜영 부소장과 정명신 팀장 [사진=윤홍집 기자]
서울해바라기센터 박혜영 부소장과 정명신 팀장 [사진=윤홍집 기자]

-성폭행 피해자는 왜 신고를 망설이나?


▲박혜영 부소장(이하 박): 강도·폭행 등과 다르게 성폭행은 피해자도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한다. "네가 평소에 어떻게 했길래" 같은 시선이다. 성폭행 피해자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줘야 하는데 "너도 잘못한 거 아니야?"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면 피해자가 극도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런 피해자의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가해자가 많다. 그래서 피해자에게 질문할 때 "너 왜 신고하지 못했니?"가 아니라 "가해자가 어떻게 말을 못 하게 만들었니?"라고 물어야 한다. "너 왜 신고하지 못했니"는 피해자에게 비난처럼 느껴질 수 있다.

△정명신 팀장(이하 정): 친족 성폭행은 어렸을 때부터 당해서 본인이 어떤 피해를 입은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다른 아이도 다 같은 줄 알았는데 성교육을 받으면서 본인이 당한 게 성폭행이라는 것을 깨닫는 사례다. 신고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네가 말하면 가족이 깨질 수 있어" "엄마나 언니가 너 때문에 괴로울 수 있어" 같은 죄책감을 심는다. '성폭력을 참고 집에서 살래' '가족을 깨고 고아원에 갈래'라고 물으면 성폭행을 참겠다는 피해자가 더 많을 거다. 피해자는 가족과 세상에 버림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친족 성폭행 사례가 아니라면?

▲박: 절대적인 권력을 갖진 가해자가 철저히 을의 입장인 피해자를 성폭행한 경우다. 회사야 그만두면 되지 않냐고 이야기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의 평생을 투자해 쌓아온 것들이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해봐라. 문화예술계, 체육계 미투가 대표적이다. 고발했다가는 가해자의 위력에 의해 업계 전체에서 매장당할까 겁먹게 된다.

△정: 신고를 한다고 해서 가해자가 반드시 처벌받는 게 아니라는 불안감도 한몫한다. 가해자가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어서 피해 사실을 말해도 사회가 자신을 믿어주지 않을 거라는 우려다. 실제로 무혐의가 많이 나고 기소율도 그렇게 높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신고했는데 자신의 피해 사실만 알려지고 무혐의가 나올 수 있지 않나. 성폭력 신고는 그야말로 생존의 문제다.

-피해자가 여론을 많이 의식하나?

△정: 해바라기센터에 방문한 상담자가 꼭 하는 말이 인터넷 기사 댓글이다. 신고하기 전에 본인과 유사한 사례를 많이 찾아본다. 그때 댓글에 "왜 신고하지 않았냐" "즐긴 거 아니냐" 등 적대적이고 2차피해적인 반응이 있으면 신고를 망설이게 된다.

-성폭행 피해자는 어떤 고통을 받나?

▲박: 성폭력의 강도와 상황에 따라 다르다. 정신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고통도 동반한다. 가해자에게 폭행과 성폭행을 당해 장기가 파열되는 경우도 있다. 말 그대로 생사의 위협을 받는다.

△정: 성폭행을 당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피해자가 많다. '나도 잘못한 게 있지 않을까' '내가 왜 더 크게 소리 지르지 못했을까' '왜 성폭행을 막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다. 혼자서 극복할 수 없었음에도 자기가 이 상황에 대해 뭔가 기여한 것 같다는 트라우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실제로 피해자와 대화할 때 죄책감과 분리시키는 것을 상담 목표로 잡기도 한다.

▲박: 친족 성폭행 같은 경우는 죄책감이 더 하다. 본인이 가족을 깬 것 같은 죄책감, 불안감을 느낀다. 사촌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어렵게 부모에게 말했는데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 "네가 뭔가 잘못했겠지"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례가 아직도 있다. 이 말을 들은 아이는 굉장한 고립감과 사회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된다. 부모가 자신을 지켜주지 않았다는 데서 오는 불신은 이후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성폭행을 당하고 신고하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정: 일반적으로 신고하는 사람보다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을 거라고 추정한다. 해바라기센터까지 오시는 분들은 굉장히 용기 있는 편이다. 심지어 해바라기센터라는 간판 때문에 오기 주저하는 분들도 있다. 이 간판이 붙은 건물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성폭력을 당했다는 거니까 '누가 보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한다. 지원기관에 방문하는 곳조차 사회적 시선이 두려운 게 현실이다. 피해자는 가해자 못지않게 성폭행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한다.

-성폭행을 당한 이후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박: 가장 먼저 전문기관과 상담하는 게 중요하다. 주변 사람에게 털어놓기 쉽지 않지만, 털어놓는 것을 권장하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이 주변에 있느냐에 따라 '그냥 덮어라'라는 반응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를 당하고 나면 혼자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해한다. 전문기관에선 피해자가 단계적으로 시스템을 밟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가능하면 증거채취를 위해 피해발생 72시간 이내에 센터로 방문하는 게 좋다. 샤워하지 않고 옷을 갈아입지 않은 상태가 증거 채취에 가장 용이하다. 음식물이나 음료를 먹지 않고 대소변까지 참으면 더 좋다.

서울해바라기센터 박혜영 부소장과 정명신 팀장 [사진=윤홍집 기자]
서울해바라기센터 박혜영 부소장과 정명신 팀장 [사진=윤홍집 기자]

-해바라기센터에선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나?


▲박: 의료지원, 수사·법률지원, 심리지원, 예방교육과 사례연구 등을 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지원하고자 한다. 상담자가 센터에 오면 초기 상담을 진행한다. 상담자에게 피해정황을 듣고 정보를 수집하는데 수사팀과 의논해서 가장 적합한 맞춤형 서비스를 구조화한다. 상담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꾸준히 이어진다.

-피해자를 치유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정: 피해자 자신의 노력과 주변 사람들의 협력이다. 특히 친족 성폭행은 치유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피해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친족들이 피해자 중심에 서지 않으면 치유되기 어렵다. 때문에 상담은 피해자 외에 가족과도 진행한다. 가족이 최대한 협력하는 상황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성폭행 여부는 어떻게 판단하나?

▲박: 수사관이 상담자 동의하에 상담을 진행하고 애매한 상황에선 상담지원팀, 수사지원팀, 의료지원팀이 모여 사례 회의를 한다. 회의에서 한 명이라도 지원하자고 하면 지원한다. 법적인 판결을 기다리려면 1~2년씩 걸린다. 센터는 피해자 지원기관이지 법원이 아니다.

△정: 증거가 없는 경우 진술에 의존하게 된다. 실제로 경험이 아닌 이상 진술을 일관성 있게 조작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센터는 전문성을 갖고 있고 진술도 여러 차례 진행하기 때문이다. 물론 소위 말하는 꽃뱀도 존재한다. 하지만 극소수의 꽃뱀으로 피해자 전체를 매도하지 않았으면 한다.

-성폭행과 관련해 조금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을까?

△정: 노인 성폭행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 지방에 혼자 사는 노인들은 범죄에 취약하다. 사람들이 노인을 성폭행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지만 그렇지 않다. 노인들은 성폭행을 당하면 수치심에 신고하지 않는다. 오히려 본인이 성적인 행위를 했다고 생각하고 망측하게 여긴다. 신고하지 않으면 가해자가 이 점을 이용해 또 다시 범행을 저지른다. 노인이 성폭행 사실을 알리자 주변에서 "수지맞았네"라고 말한 사례도 있었다.

-사회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

▲박: 성폭력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가해자에 대한 확실한 처벌이 필요하다.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가 누구냐에 따라 묻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례가 사회를 불신하게 만든다.
내가 피해를 당했을 때 사회가 내 편을 되어줄까,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을까 끝없이 불안하게 된다. 가해자만 피해자의 입을 막는게 아니다.
사회도 피해자의 입을 막는다.

#성폭행 #피해자 #서울해바라기센터 #신고 #무고 #위로

[글 싣는 순서]
① 무고 아니냐고요? 성폭행 당하고 신고 못한 심정을 아시나요?
② "성폭력 피해자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 위로하는 사회가 되어야"
③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성폭행 피해자도 똑같은 사람인걸요"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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