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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기미 상궁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3.31 16:20

수정 2019.03.31 16:20

궁중 암투가 잦았던 조선시대 왕들은 늘 신변 위협을 느끼며 살았다. 이는 '기미(氣味)를 본다'는 말의 유래에서 짐작된다. 왕들이 매끼 수라를 들기 전에 큰방상궁이 먼저 음식 맛을 본다는 뜻이었으나, 기실은 독(毒)의 유무를 검사하는 절차였으니….

베트남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캐비아와 푸아그라, 랍스터 같은 고급 메뉴로 만찬을 즐겼다는 비화가 공개됐다. 회담장이었던 소피텔메트로폴 호텔의 폴 스마트 총괄조리장은 지난주 중국신문주간과의 회견에서 "김정은의 요리사들은 (일본이 원산지인) 와규 소고기, 푸아그라, 인삼 등 그들만의 식자재를 따로 갖고 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가 식사하기 1시간 전쯤 수행원들이 일일이 맛을 보며 검식을 했다"고 귀띔했다.

이쯤 되면 이씨 왕조 '기미 상궁'의 역할이 '김씨 3대 세습체제'에서 부활한 형국이다.
그만큼 최근 김 위원장이 자신의 안위에 부쩍 신경을 쓰고 있다는 방증이다. 하긴 권좌에 오른 후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처형하고, 이복형인 김정남마저 독극물로 제거한 그였으니…. 어쩌면 북핵 문제로 인한 국제사회의 제재로 경제사정이 나빠지면서 당·정·군 고위층의 불만이 누적될까 걱정스러울지도 모르겠다.

반북단체 '자유조선'(옛 천리마민방위)의 최근 행보도 주목된다. 이 단체는 지난 2월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침입사건이 자신들 소행이라고 밝혔다. 2017년 암살당한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을 구출했다고 주장하는 자유조선은 얼마 전 북한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했다.
이 단체의 실제 역량은 미지수다. 다만 '김씨 왕조'의 적장자이자 '스페어 타이어' 격인 김한솔을 미국이 보호 중이라는 소문에 북한도 내심 께름칙할 법하다.
북 비핵화 실패 시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과거 조지 W 부시 정부가 만지작거렸던 '레짐 체인지'(북 정권교체) 전략을 다시 빼들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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