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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노미네이션, 터키 ‘新리라’로 물가잡았지만 대부분 국가는 사회혼란

장민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4.17 17:32

수정 2019.04.17 22:48

리디노미네이션 해외 사례는
짐바브웨·북한 화폐개혁 상처만..韓은 50년 넘게 화폐단위 고수
네자릿수 환율 등 현상황 안맞아..정부·국회선 부작용 우려 미온적
리디노미네이션, 터키 ‘新리라’로 물가잡았지만 대부분 국가는 사회혼란

전 세계에서 화폐개혁을 단행한 국가로는 터키, 루마니아, 가나, 아제르바이잔, 모잠비크, 짐바브웨, 베네수엘라, 북한 등이 있다. 화폐개혁에는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과 신권·고액권 발행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정치·사회·경제적 이유로 물가가 폭등하면서 기존 화폐가 교환의 매개수단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을 성공적으로 단행한 나라는 터키가 꼽힌다. 터키 리라화는 2004년까지만 해도 유엔 회원국 화폐 중 달러당 가치가 가장 낮았다. 1940년대 달러당 1.5리라였던 환율은 2003년 3월 달러당 최대 171만리라까지 치솟았다.
터키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와 초인플레이션의 여파로, 당시 직장인 한달 월급이 2억리라에 달했는데, 호텔 1박 비용만 1억리라 수준이었다. 또 고정환율제를 변동환율제로 바꾸면서 리라화의 가치 하락은 가속화됐다. 터키 정부는 1981년부터 20여년간 평균 2년에 한번씩 새 고액권을 발행하며 물가를 낮추는 데 주력했다. 이후 1970년부터 2003년까지 매년 50%에 육박했던 터키의 물가상승률은 2004년 8.6%로 한자릿수로 떨어졌다. 이에 터키는 2005년 1월 1일 화폐가치를 종전 대비 100분의 1로 낮춘 신리라화를 발행하며 물가안정에 성공했고, 2004~2007년 경제성장률도 평균 7%를 상회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는 실패를 면치 못했다. 짐바브웨는 2006년·2008년·2009년 세 차례에 걸쳐 화폐단위를 바꿨다. 2009년에는 1조대 1 비율의 초유의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했지만 여전히 물가폭등은 이어지고 있다. 북한도 2002년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한 이후 물가가 급등하자 이를 해소하기 위해 2009년 11월 30일부터 임금은 종전 금액수준을 새 화폐로 보장하는 가운데 현금은 구권 100원을 신권 1원으로, 예금의 경우 구권 10원을 1원으로 교환하게 했다. 물가 불안을 먼저 잡지 못한 채 화폐개혁을 밀어붙이면서 물가 급등세는 이어지고 사회혼란만 가중된 것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달러당 네자릿수 환율 국가다. 1962년 마지막 화폐개혁 이후 50여년간 경제규모가 급성장하고, 물가도 이에 비례해 올랐지만 여전히 화폐단위에는 변화가 없다.

과거 박승 한은 총재는 2002년 취임 당시 '화폐제도개혁추진팀'을 구성하고 리디노미네이션을 포함한 화폐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물가 불안 등을 우려한 정부의 반대로 실현되지는 않았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2015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리디노미네이션 언급을 한 이후 관련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긴 했지만 한은은 직접 나서는 모양새가 부담스러운 분위기다. 실제 이 총재도 "장점 못지않게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있다"며 원론적 입장만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은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할 경우 우리 경제·사회 전반에 엄청난 파급효과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화폐개혁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는 시기상조라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한은의 리디노미네이션 비용·편익 연구가 2004년 외부에 공개된 이후 15년이 지났지만 비용·편익을 분석한 후속 연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당시 한은은 원화를 1000대 1의 비율로 절하해 새로운 화폐를 발행할 경우 자기앞수표 발행 및 관리비용 등의 절감으로 8조6000억원의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이는 비용(2조6700억원) 대비 3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국회에서도 법안 발의 등을 통한 적극적인 논의는 이뤄지고 있지 않다. 리디노미네이션을 위해선 국회에서 한은법 및 관련법이 개정돼야 한다. 2004년 당시 김효석 민주당 의원은 현행 화폐단위를 1000분의 1로 축소하는 한은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예컨대 1000원은 1환으로, 1환은 100전으로 분할하는 내용이었다.


이승석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단위를 바꾸는 것은 경제학적으로는 간단하지만 실제 사회에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문제"라며 "기술의 발전으로 전자화폐 등이 나타났지만 아직 관련 논의를 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가치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 거래단위를 낮추는 것을 말함. 예를 들면 1000원을 1원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과도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거나 경제규모 확대로 거래가격이 높아지면서 불편을 야기할 때 도입된다. mkchang@fnnews.com 장민권 예병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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