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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녹세권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4.18 16:31

수정 2019.04.18 16:31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지난 2007년 '아파트 공화국'이란 책을 펴냈다. 그녀의 눈엔 한국에선 모든 계층이 아파트를 선호한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던 모양이다. 파리에선 아파트가 주로 저소득층 거주지라서다. 그래서인지 책 내용도 천편일률적 외형에다 이웃과 담을 쌓는 듯한 서울의 아파트들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사실 그간 국내에서 개성 있는 외관에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룬 아파트는 드물었다. 어찌 보면 거주 희망자들이 규모(평수)나 교통여건을 주된 선택의 잣대로 삼은 결과다.
편리함과 재산 가치에 최우선순위를 두었다는 얘기다. 'OO 팰리스' 'OO 캐슬' 등 과시형 단지 이름은 그 부산물이다. 출퇴근 시간을 줄이는 편의를 제공하는 '역세권' 아파트들이 뜬 배경이기도 하다.

근래에 이런 주거문화에 변화 조짐이 보이고 있다. 녹지에 근접해 쾌적한 환경을 갖춘 이른바 '녹세권' 아파트들이 주목을 받으면서다. 특히 최근 미세먼지가 국민건강을 위협하면서 녹세권 아파트들은 전국적으로 뜨는 분위기다. 먼발치 야산이 보이는 조망 프리미엄을 내세우던 시절은 이제 구문이다. 원주 등 지방도시에선 공원 바로 곁 아파트들이 희소가치와 함께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일찍이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도전과 응전'을 역사발전 법칙의 키워드로 압축했다. 그의 말처럼 변화하는 주거 문화에 맞춰 국내 기업들도 최적화된 대응책을 찾고 있다. 미세먼지로 인해 녹세권 아파트들이 뜨자 건설사들 간 공기 질 개선을 위한 첨단시스템 도입 경쟁이 불붙을 참이다. GS건설이 첫선을 보인 신개념 공기청정시스템인 '시스클라인'이 단적인 사례다.
미세먼지가 부른 이런 선순환 효과들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도 관심거리다. 아파트 밖이 안보다 쾌적하면 굳이 담장을 높일 까닭도 없다.
녹세권의 부상이 폐쇄적인 우리 아파트 거주문화를 바꾸는 나비효과를 부를지 지켜볼 일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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