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서]

자동차 노조, 변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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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는 종(種)은 강한 종이 아니고, 똑똑한 종도 아니다. 변화에 적응하는 종이다". 영국의 자연생물학자로 생물진화론 주창자인 찰스 다윈이 인생을 바쳐 깨우친 생존법칙이다. 생물만 그럴까. 현대사회도 마찬가지다. 힘만 세다고, 영리하다고 살아남는 게 아니라 환경 변화를 철저히 살필 수 있는 안목과 적응능력이 미래를 결정짓는다. 기업도 같은 범주다. 특히 4차 산업혁명으로 혁신과 변화가 몰아닥친 산업계는 다윈의 명언이 어느 때보다 절절하게 와닿을 수밖에 없다. 수년 내 패러다임 전환에 제때 적응하지 못하면 글로벌시장에서 도태되는 치열한 생존경쟁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자동차 노조엔 딴 세상 얘기다. 예전 모습 그대로 바뀐 게 없이 투쟁일변도의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해마다 반복되는 과도한 요구와 파업은 기업뿐 아니라 국민도 돌아서게 만든다.

현대차 노조가 올해 임단협에서 제시한 기본급 인상 요구액은 지난해 실제로 올린 4만5000원의 약 3배인 12만원대다. 1년 만에 이 정도로 기본급을 올려줄 만큼 여력이 넘치는 기업이 있을까. 법정 정년이 만 60세로 연장된 지 2년도 안됐지만, 최대 만 64세까지 정년연장을 또 요구하고 나섰다. 순이익의 30% 성과급 요구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빼놓지 않았다. 현대차가 수익성 개선과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 명운을 건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데 노조는 잔치나 다름없는 요구안들을 늘어놨다. 노조원의 시선을 의식한 정치적 행위이자 협상전략이라고 치자. 간극을 좁히는 데만 수개월간 소모적 시간과 역량을 쏟아야 한다. 언제까지 관성적 요구안들을 꺼내들고, 마뜩지 않으면 파업을 반복할 것인가. 올해에도 파업하면 9년 연속이다. 팰리세이드 등 인기모델 증산도 해당 생산라인 노조 대의원들의 서명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증산은 노사 협의가 아니라 합의사항으로 돼 있어서다. 해외 자동차 브랜드에서도 유례가 없는 노조의 갑질이다.

르노삼성 노조는 11개월 만에 임단협을 잠정합의하기까지 62차례의 부분파업을 벌였다. 그사이 연간 4만대가량의 로그 생산물량을 일본에 뺏겼다. 내수시장에선 판매량이 반토막나고 브랜드이미지도 손상돼 안팎으로 치명타를 입었다. 지난 2월 노조가 갑작스레 꺼내든 생산인력 전환배치 합의 요구가 도화선이 됐다. 전환배치 노사 합의 역시 해외 자동차업계에선 전무하다. 전환배치는 일감이 충분하면 굳이 필요가 없다. 하지만 노조의 강경투쟁 과정에서 로그 할당물량이 줄어 오히려 전환배치의 필요성은 더 커졌다. 결과적으로 노조의 대화와 타협이 아닌 시대착오적 투쟁방식이 패착을 초래했다.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의 노조는 그들의 주장을 관철시킬 줄 몰라서 파업을 안하는 게 아니다. 막무가내식 투쟁은 공멸을 자초한다는 걸 잘 알아서다. 도요타 노조는 1962년 회사 브랜드 보호를 위한 무파업 선언 이후 50년 이상 파업을 벌이지 않았다. 이는 지난해 도요타가 일본기업 처음으로 연 매출 30조엔(약 325조원)을 돌파하는 동력이 됐다. 고질적인 '고비용·저효율' 구조와 후진적인 노조의 행태로 역주행하는 한국 자동차업체들과 사뭇 대조적이다. 이제 자동차 노조도 변해야 산다.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강성 노조의 목소리에 더 이상 귀 기울일 사람은 없다. 더구나 연봉 1억원에 육박하는 '귀족노조'의 배부른 요구와 명분 없는 파업은 반노조 정서만 확대시킬 뿐이다. 변화 앞에 기업과 생존을 모색하는 현명한 노조가 진정한 승자다.

winwin@fnnews.com 오승범 산업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