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에 가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53)이 첫 재판에서 검찰의 수사에 대해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유 전 수석은 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해 “언론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혹은 사법농단 사건이라 표현하는 이번 일은 사법부 역사에 유례없는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전에 가져온 입장문을 읽으며 "실제로 누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만이 아니라, 수사 절차가 과연 적법하고 공정했는지도 낱낱이 역사의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 전 수석은 "사상 초유의 전·현직 법관에 대한 수사이기에 검찰 역시 고충이 있었겠지만 정의를 행한다는 명분으로 정의롭지 않은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민주국가에서 용납될 수 없다"며 "총체적 위법수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구체적인 위법수사의 사례로는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 △비공개 면담 조사 △별건 압수수색, 언론을 활용한 대대적 피의사실 공표 △표적수사 △과잉수사 △별건수사 △영장주의 위반 등을 지목했다.
유 전 수석은 법관 시절 이 같은 수사 행태에 대해 몰랐다며 자성하게 됐다는 입장도 내비쳤다.
그는 "판사들이 그간 무덤덤하다가 자기 일이 되니 기본 인권이나 절차적 권리를 따진다는 언론과 국민의 비판을 뼈아프게 받아들인다"면서도 "15년 전부터 조서에 의한 재판 등의 폐단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고, 겪어보니 수사 실상이 이런지 몰랐다는 것을 깨우쳤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감히 우리의 수사·재판이 국가의 품격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이번 기회에 디딤돌이 되는 판례 하나를 남기는 것이 제 운명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유 전 수석은 "때로는 삶이 죽음보다 구차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수사 단계에서 저는 이미 언론에 중대 범죄자로 찍혀 만신창이가 됐고 모든 삶이 불가역적인 타격을 받았지만, 인권의 최후 보루인 법원만은 증거와 법리에 따라 공정하고 합리적 심리를 해 달라"고 호소했다.
검찰은 유 전 수석의 주장에 대해 "표적수사, 과잉수사 등을 이야기하지만, 사법농단 수사 중에 피고인의 범죄 혐의가 드러난 데다 고의로 중요 증거를 인멸한 사실이 있어 수사에 착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반박했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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