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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정치인 박원순의 시간

안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5.27 17:24

수정 2019.05.27 17:24

[여의도에서]정치인 박원순의 시간

서울시를 출입하게 된 이후 주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박원순 시장은 어때?"라는 말이다. 출입기자라고 해서 박 시장을 조석으로 만나는 것도 아닌데, 이럴 때마다 딱히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잠깐 고민이 스친다.

박 시장은 3번째 서울시장 임기를 보내고 있고, 오랫동안 주목받아온 정치인이지만 아직도 상당수 시민들이 박 시장을 가장 많이 만나는 곳은 TV 화면 속이다. 그냥 보기만 해서야 사람의 결을 제대로 알기는 어려우니, 박 시장이 실제 어떤 느낌인지 궁금할 만도 하다.

보통 박 시장을 '서민적이다', 혹은 '옆집 아저씨 같다' 고 말하는데 이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서민적 외모는 친근한 동네 아저씨 같을지 모르겠지만, 실제 대화를 나눠보면 보는 것과는 느낌이 많이 달라서다.


일단 박 시장은 영어가 유창하다. 버터를 바른 듯 원어민 같은 발음은 아니지만, 해외에 나가면 공식행사나 만찬장에서 얼마든지 통역 없이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다. 게다가 시민운동가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변호사 시절에는 막대한 재산을 모았을 만큼 경제적 수완도 뛰어나다. 수더분한 옆집 아저씨라고 보기에는 언뜻 어울리지 않는 사실들이다.

박 시장은 시정을 책임지는 행정가이지만, 또 한편에서는 유력한 정치인이다. 그런 연유로 정치인 박원순의 화법은 상당히 흥미롭다. 대화를 나눠보면 말도 상당히 많고, 자기 PR에도 능수능란하다. 특히 문제를 지적할 때는 직설적이고 선명한 표현을 즐겨 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 대한 박 시장의 연이은 쓴소리는 정치인으로서 단면을 정확히 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세간에서는 이런 행보를 놓고 관심들이 많다.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여권의 유력 정치인이 제1 야당 대표를 향해 화살을 날리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최근 박 시장의 지지율은 1년 전에 비해 많이 낮아졌다. 작년 9월까지만 해도 리얼미터 조사에서 범진보진영 대선후보 선호도가 1위였기 때문이다. 최근의 강경한 발언들이 내년 총선, 더 멀리 대선을 염두에 둔 존재감 알리기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것에는 이런 이유도 있다.

지지율이 낮아진 것은 충분히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지만 과연 지금 박 시장이 자신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조급해야 하는 상황인지는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다.

흔히 눈에 띄는 치적이 없다고는 하지만, 사실 박 시장의 핵심정책들은 3선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두번의 임기에서 서민을 위한 복지를 어젠다로 삼았다면, 3번째 임기 들어서는 중앙정부가 해야 할 수준의 대형 정책을 주제로 내세우고 있어서다.

미세먼지나 청년창업, 제로페이 등은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해야 할 문제이지만 박 시장은 이를 자신의 브랜드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박 시장은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잇단 강경발언으로 대선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아직 3년이나 남았는데, 어불성설"이라고 엄격히 선을 그었다.


맞는 얘기다. 올해 내놓은 굵직한 정책들이 성과를 내놓으려면 어차피 1~2년의 숙성기간이 필요하다.
당장 누군가를 공격하며 조급하게 굴지 않더라도, 적당한 시기에 바람이 불 때까지 아직 박원순 시장의 시간은 여유가 있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정책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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