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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상감령과 파로호

미·중 무역전쟁이 다양한 '나비효과'를 부르고 있다. 최근 중국 관영 매체들이 6·25전쟁에서 미군과 맞선 중공군의 감투정신을 집중 부각 중이다. 6·25를 중국은 '조선(북한)을 도와 미국과 싸웠다'는 뜻으로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라고 부른다. 이를 소재로 1956년 제작된 영화 중 하나가 '상감령'(上甘嶺)이다. 중국 매체들이 이를 집중 방영하면서 대륙을 60여년 전 냉전시대 정서로 물들이려 하는 형국이다.

중국 화웨이의 런정페이 회장이 '상감령 투혼'을 거론했다. 그는 26일 중국 CCTV에 나와 "(당시처럼) 백병전을 벌여 고지에 올라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인민해방군 장교 출신으로서 미국의 제재에 맞서 결사항전 의지를 보인 셈이다. 상감령은 1952년 10월 14일~11월 25일 유엔군과 중공군이 치열한 고지전을 벌였던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오성산 일대를 가리키는 중국 측 표현이다. 오성산 정상이 종전 후 휴전선 북쪽에 남게 되고, 중국은 미국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전적지로 미화해 왔다.

미국의 제재로 화웨이는 요즘 사면초가에 빠졌다. 그래서 삼성과 하이닉스, LG 등 한국 기업을 돌며 부품조달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중국 정부도 '상감령'이나 '빙혈장진호'(氷血長津湖) 등 6·25를 다룬 영화로 반미의식 고취에 나섰다. 이는 '기술냉전'에서 수세에 몰린 중국의 처지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이 6·25를 미·중 무역전쟁에 투사하면서 한반도 분단의 현실을 일깨웠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냉전과 공룡과 같은 이웃이 바로 곁에 있음을 실감케 하면서다.
중국이 우리 정부에 강원도 화천군의 파로호(破盧湖)의 명칭을 바꾸라고 요구하고 있다니 말이다.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란 뜻의 파로호 명칭은 한국군이 중공군에 승리한 기념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붙였다. 6·25 전쟁사를 중국의 시각으로 미화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패전의 흔적까지 지우려고 한다니…. 중국의 이 '패권 본색'이 새삼 우리를 소스라치게 할 정도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