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마음상담소] 끊을 수 없는 커피와 담배…저는 중독일까요?

윤홍집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6.01 09:59

수정 2019.06.01 09:59

"지나치다 해서 모두 중독 아냐…의학적 기준에 부합해야 중독"
"알코올 중독은 뇌질환…의지 부족으로 보지 말아야"
"질병으로 분류된 게임중독…치료할 수 있는 국제적 기준 생겨"
[편집자주] '마음상담소'는 우리도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혹은 겪고 있는 마음의 병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진=fn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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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아침에 커피 한 잔을 사야 할 때.

점심 식사 후 담배 한 개비를 피워야 할 때.

퇴근하고 별다른 이유 없이 소주 한 잔이 마시고 싶을 때.

잠들기 전 피곤한데도 스마트폰을 놓을 수 없을 때.

"나는 중독일까?"

문득 떠오른 이런 생각은 기우인 경우가 많다.

일상적 의미의 중독과 의학적 의미의 중독은 구분되기 때문.

노성원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겸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 부단장은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해 일상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수준을 의학적 의미의 중독이라고 한다"며 "지나치다고 해서 모두 중독은 아니"라고 말했다.

다음은 노 교수와 나눈 이야기 전문.

-커피, 담배, 스마트폰 등 현대인에게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 모든 걸 중독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볼 수 없다. 어떤 일에 빠졌을 때 흔히 "중독됐어"라는 말을 많이 쓴다.
하지만 이는 중독의 의학적 개념과 다르다. 의학적 개념의 중독은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해서 일상을 망가뜨리는 수준을 말한다. 금단현상을 겪거나 내성 증상이 생기고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을 수 없는 상태다. 중독이라고 진단을 내릴 땐 기준이 존재한다. 술과 커피를 지나치게 마신다고 해서 모두 중독이라고 할 순 없다. 물론 건강에는 안 좋겠지만.

-얼마나 마셔야 알코올 중독인가?

▶알코올에 대한 양과 빈도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진단 기준이 될 수 없다. 중요한 건 일상 생활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즉 증상이다. 알코올 중독은 음주에 대한 조절능력 장애를 말한다. 예를 들어 소주 한 병만 마시겠다고 했는데 끝없이 마시고, 금단현상이 생겨 손이 떨리거나 불안·초조해지는 등의 증상이 생기면 의심해 볼 수 있다.

-알코올 중독은 성격이나 의지의 문제일까?

▶알코올 중독자에 대해 의지가 약하다, 정신을 못 차린다고 비난하는 시선이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알코올 중독은 본인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충동을 조절할 수 없어 일어나는 뇌 질환이라고 봐야 한다. 증상에 걸맞은 약을 먹고 상담을 받는 등 치료해야 한다.

-중독의 원인은?

▶첫 번째는 유적적 원인이다. 중독질환에 취약성을 타고난 것. 알코올 중독의 원인은 60%가 유전이라고 얘기할 정도다. 두 번째는 뇌의 구조와 기능이 정상인과 다른 경우. 세 번째는 중독에 걸리기 쉬운 환경을 말한다.

-중독에 걸리기 쉬운 환경?

▶사회적 약자 계층이 중독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일상에서 보람을 느끼기 어렵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뇌를 즐겁게 해주는 중독에 빠질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사회,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해서 모두 중독환자가 되는 건 아니지 않나. 중독의 원인은 복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한 가지로 규정하는 건 비약이라고 생각한다.

노성원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겸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 부단장
노성원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겸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 부단장

-중독은 우울증 등 다른 정신질환과 관련이 있을까?


▶우울증이나 불안증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우울한 사람이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알코올 중독에 걸린다는 이론에 힘이 실렸다. 그러나 최근엔 중독에 걸려서 우울증이 온다는 이론이 더 조명받는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지만, 최근에는 중독이 먼저라고 한다.

-중독환자를 치료한 사례를 소개해 줄 수 있을까?

▶알코올 중독 환자 중에 술 때문에 간이 다 망가져서 자녀들에게 간이식까지 받은 환자가 있었다. 이 환자는 자식에게 간이식을 받고도 술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어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2년간 입원, 약물치료를 받은 끝에 지금은 술을 한 잔도 안 마시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 알코올 중독 환자는 대개 치료를 거부하고 질환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경우가 많다. 필요한 경우엔 입원을 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최근 WHO에서 게임중독을 질병이라 규정했는데?

▶게임과 관련해서 금단현상이 없는데 어떻게 중독이냐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미국의 정신의학회에 따르면 게임중독 역시 금단현상이 있다. 게임을 하고 싶은 상황에서 게임을 못 했을 때 불안하고 화가 나는 증상이다. 미국 정신의학회에선 9개의 진단기준이 있고 이 중 5개 이상일 때 질병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또 뇌영상연구나 뇌파검사를 통해 게임중독자와 일반인의 뇌를 비교했을 때 차이가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게임중독과 관련된 연구는 지금까지 4800건 정도의 논문이 있을 정도로 오랜 기간 연구됐다. 게임중독은 사회적 손실과 개인의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됐기 때문에 WHO에서 질병으로 인정한 것이다.

-질병으로 규정하면 무엇이 달라지나?

▶게임중독으로 치료가 필요한 사람과 일반인 사이를 구분할 수 있는 국제적인 기준이 생겼다는 것이 크다. 지금까지는 국가와 기관마다 다른 기준으로 진단했지만 이제는 일관된 기준으로 환자를 볼 수 있다. 이 기준에 맞춰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 등 정신사회적 치료를 개발하고 적용함으로써 보다 효과적인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의사 개인으로서 게임중독의 질병 규정을 찬성하나?

▶당연하다. 게임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게임을 했을 때 중독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게임으로 인해 건강이나 일상에 지장을 받는 환자가 있다면 국민건강 보험 체계 안에서 공식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생각이 든다. 게임중독에도 의료보험 서비스를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은 환자 입장에서도 환영할만한 소식이라고 생각한다.

-중독에 벗어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건강한 일로 시간을 채우고 바쁘게 지내라는 조언을 한다.
건강한 일은 대체로 재미가 없지 않나. 그래서 바쁘게 지내라는 것이다. 사람은 지루해지면 자극을 떠올리게 된다.
바쁘게 일과를 짜고 땀 흘리며 하루를 보내다 보면 자극을 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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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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