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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다가가 전투의 실재적인 모습을 그려내다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6.08 07:59

수정 2019.06.08 07:59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8] <론 서바이버>
가까이 다가가 전투의 실재적인 모습을 그려냈다. 때로 과하거나 부족하게 느껴진 부분도 있었으나 적어도 전쟁영화의 새 마당을 다진 것 만큼은 분명하다.

국내 배급 포스터.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국내 배급 포스터.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웰컴 투 더 정글>과 <프라이데이 나잇 라이츠>를 통해 근성있고 현장감 넘치는 액션 연출에 자질을 나타낸 바 있는 피터 버그 감독의 장점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그는 이 영화를 분기점 삼아 <딥 워터 호라이즌> <패트리어트 데이> 등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연이어 연출하며 제 색깔을 가진 일류 연출가로 입지를 공고히했다.

<론 서바이버>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네이비씰 잠수특전대가 벌인 '레드 윙 작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비교적 단순한 서사에도 기존 전쟁영화들과 차별화되는 영상을 구현한 수작이라 평가된다.


극화된 전투신 연출과 작위적인 감동의 주입으로 일관하는 기존의 전쟁영화와는 달리 국지적인 전투의 실재적 재현을 이루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특별히 의의가 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2002년작 <블랙호크 다운>이 앞서 비슷한 지점을 향해 나아갔으나, 보다 고증에 충실했으며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에 더욱 가까이 다가섰다는 점에서 찬사받아 마땅하다.

적나라한 사운드와 적절한 촬영기법, 오프닝을 포함해 초반의 십여 분 만으로 캐릭터 전반을 설정하는 솜씨까지 전반적으로 깔끔한 솜씨가 돋보였다.

마크 월버그와 에릭 바나 같은 유명 배우도 비교적 무명에 가까운 다른 출연진과 잘 융화됐으며, 대사와 행동연기를 통한 표현의 영역이 좁았음에도 각자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무엇보다 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전투신 연출이 훌륭했는데, 네 명의 네이비씰 대원이 100명이 넘는 탈레반을 사살하면서도 사지로 몰리는 상황이 쉽게 이해가 되면서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있어 보는 내내 몰입할 수 있었다.

정밀한 고증과 그에 기인한 섬세한 디테일도 인상적이다. 영화에 등장한 특색있는 화기들은 물론, 나무에 기대어 최후를 맞이하는 대원의 머리 위로 빗나간 두 발의 총탄과 같은 것이 그러했다. 네이비씰 대원들과 달리 탈레반의 화기는 영점도 잡히지 않고 무작위로 지급된 게 대부분이라 실전상황에서 큰 차이가 벌어진다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레드윙 작전에 투입된 네이비씰 대원들.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레드윙 작전에 투입된 네이비씰 대원들.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전쟁영화, 게다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찍으면서 가치적인 측면에서 중립을 유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바람직한 태도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어디까지나 미국의 입장에서 탈레반을 그저 '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의 장르적 특성과 제작의도를 생각해 볼 때 허용할 수 없는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국이 치르는 전쟁을 필요이상 미화하는 여러 영화를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으나 이 영화의 경우에는 전쟁 전반이 아닌 국지적 전투의 실재적 재현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논쟁에서 어느정도는 자유로워도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 속 도덕적 결정의 문제에 있어서도 다소 성급하고 싱겁게 결정되고 연출됐다는 아쉬움이 없지는 않으나 실화가 그렇다니 특별한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리고 이는 사브레이 부족의 남자가 '파슈툰왈리'라는 오래된 규칙에 의해 마커스를 구해주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특히 마커스가 사브레이 부족의 마을로 들어간 이후의 이야기는 극적 재미를 위해 각색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고 계속 이어오던 실화의 충실한 재현이라는 영화의 분위기와 다소 달라진 부분이 있어 아쉬웠다.

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옳은 결정을 해야만 할까? 영화 속 등장하는 두세 차례 도덕적 딜레마 순간은 사실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무고한 민간인을 해칠 수 없어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을 풀어주는 대원들, 지휘본부에 연락하기 위해 개활지로 나가 장렬히 산화하는 중위, 규율을 지키기 위해 마을을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마커스를 지켜준 부족민까지.

그들의 결정은 과연 옳았을까? '내가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어떤 행동을 하겠는가'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한다는 점에서 나는 이 영화가 매우 마음에 든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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