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순의 느린 걸음]

블록체인 영토전쟁 선언한 페이스북

페이스북이라는 인터넷 대륙의 거대 영주가 블록체인이라는 신대륙에 성을 쌓기로 했다. 신대륙이 탐나긴 하지만 어떤 위험한 동물이 사는지, 먹을 것은 충분한지 확인된 게 없어 불안했다. 그래서 성을 함께 쌓고 운용을 의논할 주주들을 모집하기로 했다. 주주는 100명 정도다. 주주들은 신대륙 개척과 성의 운용방식을 논의하는 원탁회의에도 참석할 수 있다. 그 권한을 주면서 10억원 정도 참가비를 받기로 했다.

아직 페이스북이 신대륙 공략과 성의 운용원칙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힌 것은 없다. 그렇지만 벌써부터 인터넷, 금융, 유통 같은 구대륙의 거대 영주들은 페이스북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알음알음 신대륙 성 건설에 참여하겠다며 페이스북에 줄을 대고 있다는 소문도 돈다. 세계 주요 언론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페이스북의 신대륙 공략 전략을 탐색하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 소문에는 오는 18일 페이스북의 '신대륙 성 건설' 밑그림이 나온다고도 한다.

페이스북의 자체 암호화폐 발행과 블록체인 사업은 결국 블록체인 산업에 독자적 영토를 확보하고 자체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선언이다. 단순하게 보면 애플이 인터넷 대륙에 성을 쌓고, 애플성 안에 들어온 기업들에 이익을 보장해줬던 모양새와 닮았다. 기존 산업을 호령하지만 더 이상 땅을 넓힐 수 없어 고민하고 있던 수많은 유력기업들을 노드 운영자라는 주주로 끌어들이는 영리한 영토확장 전략을 쓴다.

한국 인터넷기업 카카오도 오는 27일 '클레이튼'이라는 블록체인 플랫폼을 공개한다. 클레이튼 역시 대규모 파트너들을 모았다. 클레이튼 성안에 음식점, 은행, 게임장 같은 다양한 서비스를 만들어 성안에 사는 사람들은 물론 성에 놀러온 관광객들도 불편함이 없도록 성을 설계했다. 기업용 블록체인 플랫폼 아르고도 노드 운영자들을 공개하고 생태계 확장에 본격 나서기로 했다. 페이스북과 엇비슷한 방식이다. 이들은 페이스북보다 한발 먼저 신대륙으로 향하는 배를 띄웠다.

인터넷 같은 구대륙에서 따지자면 카카오나 아르고를 페이스북에 비교하는 건 말이 안된다. 그런데 블록체인 신대륙에서 보면 페이스북이나 클레이튼이나 아르고가 굳이 덩치 비교를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영토전쟁이라는 게 누가 더 발빠르게 신대륙에 깃발을 꽂고 넓은 성을 쌓아 덩치를 키우느냐가 성패의 잣대다. 어쩌면 신대륙 영토전쟁은 페이스북보다 카카오나 아르고가 먼저 선언한 셈이니 승산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한 핀란드의 사울리 니니스퇴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스타트업과 벤처기업 성장에 있어 정부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장애물을 없애는 것"이라며 "혁신을 위한 자유로운 환경을 조성하고, 경제주체들이 장애물을 피해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페이스북과 블록체인 신대륙에서 경쟁하게 될 우리 기업들 앞에서 정부가 장애물을 만들지는 않았으면 한다. 페이스북, 구글 같은 글로벌 공룡과 네이버, 카카오 같은 우리 기업 이름을 나란히 적어넣은 기사를 쓰고 싶는 게 꿈이었다. 블록체인 신대륙에서 그 꿈이 이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슬그머니 웃음이 돈다.

cafe9@fnnews.com 이구순 블록포스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