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지식재산 분쟁은 양강 사이 일어나..다자주의 회복해 국제 룰 만들어야"

이병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6.13 17:58

수정 2019.06.13 17:58

세계지식재산기구 사무총장 프랜시스 거리
산유국이 석유 나눠주나
선진국은 자신들 기술 지키려 하고 개도국은 따라갈 방법 찾으니 마찰
회원국간 신뢰할 수 있는 환경 만드는 게 WIPO 역할
한국은 지식재산 분야 모범국가..하지만 도전해야 될 과제는 있어
인공지능·빅데이터 활용..어떻게 관리·규제할지 고민해야
14일 국제지식재산권 컨퍼런스 'IP가 나아갈 길'주제로 기조연설
사진=박범준 기자
사진=박범준 기자

'다자주의 회복, 빅데이터·인공지능(AI) 등 신기술 규제.'

3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프랜시스 거리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사무총장은 최근 지식재산 분야의 최대 이슈를 이렇게 정리했다.

거리 사무총장은 지난 12일 서울 소공로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파이낸셜뉴스와 단독 인터뷰를 하고 "최근 국가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이라며 "특히 다자주의가 위협받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럴 때일수록 지식재산 분야를 포함해 다자주의 기반의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며 "지식재산 분야에서도 국제적 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제적 기준이나 룰이 없을 경우 규모가 큰 국가나 경제집단, 기업 등이 룰을 만든다"며 "예를 들어 유럽연합에서 새로운 룰을 만들고, 중국이나 미국도 같은 사항에 대해 조금 다른 기준을 만들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국가 간 상호의존도가 높은 상황일수록 국제적 기준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심화되고 있다. 무역전쟁의 이유 중 하나가 지식재산, 산업기술 보호다.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앞으로 지식재산 보호가 각국의 경제마찰로 이어질 것으로 보나.

▲역사적으로 봤을 때 한 국가의 국력이 강화되면 긴장감이 조성된다. 그러나 긴장감이 어디에서부터 조성됐느냐를 살펴봤을 때 기술과 혁신, 지식재산에서 비롯된다. 이런 것들이 국가 간 경쟁요소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결국 지식재산은 새로운 기술과 혁신이라는 경쟁 우위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 사실 현재 미·중 무역전쟁은 정보가 부족하고 상황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아서 정확하게 진단하기 어렵다. 다만 그 여파가 전 세계에 미치고 있어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 최근 분쟁은 다자적이기보다는 양자 사이에 일어난다. 다자주의를 통해 국가 간 협력을 도모해야 한다.

―선진국은 지식재산을 보호하려 하고, 개발도상국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기술을 따라잡으려 한다. 이런 가운데 국가 간 마찰이 종종 생긴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각국은 어떤 지식재산 정책을 펼쳐야 하며 국제기구의 역할은 무엇인가.

▲지식재산 분쟁은 비슷한 기술력과 경제력을 갖춘 국가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개도국이나 후진국은 선진국의 기술을 도용해도 활용할 역량이 없다. 예를 들면 나노기술이 담긴 이동식저장장치를 이들 국가가 가져가도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기술과 역량이 없다. 결국 미국과 중국, 유럽과 미국, 유럽과 동북아시아 국가 등이 지식재산 관련 마찰이 있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비슷한 기술역량을 갖춘 국가들이 원친과 룰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합의된 새로운 룰을 만드는 것도 어렵다. 현재 주요 열강들은 양자주의에 기반한 룰을 만드는 것을 선호한다. 궁극적으로는 국제적 기준과 원칙이 필요하다.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의 양자주의가 다시 다자주의로 가기 위해서 국제기구나 회원국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사실은 매우 어려운 문제다. 우리는 국제기구라서 회원국이 룰을 만든다. 비유하자면 우리의 역할은 말을 연못까지 끌고는 갈 수 있지만 물을 마시게는 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회원국 간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서로 입장을 주고받고 서로를 이해하다 보면 공통적으로 이해관계가 도출되고, 거기서 협력하고 원칙을 만들 수 있다.

―국가 간 기술격차가 커지고 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개발도상국들은 강력한 지식재산 보호에 반대하는 모습도 보인다. 지식재산의 역할은.

▲사실 중요한 도전과제다. 기술적 역량 때문에 국가 간 격차는 축소보다 심화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지식재산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지식재산은 기술이나 발명품 등을 한정된 기간 보호하고, 그 후에는 공공의 영역에 공개해 모든 사람이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결국 특허시스템을 통해 기술을 생산하고 제공한다. 예를 들어 색소폰은 전통악기 중 유일하게 특허를 출원한 악기였다. 1842년 벨기에의 아돌프 색스(Adolphe Sax)라는 사람이 만들어 특허출원을 했다. 그 이후 40년 동안 색소폰과 관련 다양한 특허를 출원했다. 마우스피스, 색소폰 크기 등에 관한 다양한 특허를 출원했다. 그 덕분에 이제는 누구나 이 정보를 이용해 색소폰을 직접 제작할 수 있다. 반면 최고의 바이올린은 이탈리아에서 제작됐다. 바이올린 제작기술은 특허출원을 하지 않았다. 지금도 가업승계로 비밀리에 제작 비법이 전수되고 있다. 이처럼 지식재산은 결국 공공의 영역에 있어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한다.

프랜시스 거리 사무총장은 △호주 멜버른대학 법학학사 △호주 변호사 자격 취득 △호주 멜버른대학 법학석사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법학박사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사무차장실·총장실·아태개발협력국 △WIPO 사무차장보 △WIPO 사무차장 △WIPO 사무총장(현) 사진=박범준 기자
프랜시스 거리 사무총장은 △호주 멜버른대학 법학학사 △호주 변호사 자격 취득 △호주 멜버른대학 법학석사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법학박사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사무차장실·총장실·아태개발협력국 △WIPO 사무차장보 △WIPO 사무차장 △WIPO 사무총장(현) 사진=박범준 기자


―기술이 공개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경제발전을 열망하는 개도국 입장에서는 이 시간을 기다리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기술적 역량을 구축하는 것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지 않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최근 기술역량을 강화해 모범사례로 꼽히는 한국, 중국, 싱가포르도 이를 구축하는 데 40년 걸렸다. 개도국의 정치지도자가 직면하는 어려움이 이것이다. 이 때문에 세계지식재산기구는 개도국을 지원해 이들이 빠르게 기술역량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런 지원은 민관 파트너십을 통해 가능하다. 한국 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쉬운 문제는 아니다. 복잡한 프로세스라서 간단명료한 답은 없지만 좀 더 쉽게 이야기하면 산유국에 석유를 나눠주라는 것과 비슷하다. 산유국에 있어 석유는 경제개발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올해 7월부터 특허침해 관련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시행한다. 우리나라의 지재권 보호에 대한 해외의 시각은.

▲한국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이야기할 게 없다. 한국은 국제 지식재산 분야의 모범적 국가이고 기준이 된다. 세계 최고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제도나 기관도 훌륭하다. 무엇보다 혁신의 가치에 대해 건강한 혁신생태계를 위해 지식재산이 필요하고 이를 활용해야 한다는 합의가 정부, 기업, 연구기관, 대학 간 형성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지식재산 분야와 관련, 개선하거나 도입해야 할 제도는.

▲한국뿐 아니라 지식재산 분야의 글로벌 도전과제는 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활용이다. 이런 기술들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관리·규제할지 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데이터가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데이터는 미개척 분야다. 예를 들어 세계적으로 의료데이터의 가치는 1500억~2000억달러로 예측된다. 누가 이 데이터의 주인인가? 환자인가, 병원인가, 플랫폼인가, 데이터 취합기관인가.

―데이터가 지식재산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나.

▲모든 것이 데이터다. 지식재산에서 발명품이나 기술에 권리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해당 데이터가 기준 등에 부합하는지 따져본다. 데이터는 무궁무진한 가치가 있다. 데이터가 디지털경제의 원동력이 되고 있지만 데이터와 관련한 권리와 의무는 명확하지 않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 하루 일과를 보내는 동안 많은 기업은 우리와 관련한 데이터를 취합한다. 개인들은 이렇게 모아진 본인 데이터의 소유권리를 주장할 수도 있다.

―한국과 세계지식재산기구의 향후 협력관계는.

▲한국은 다자 간 협력을 하는 데 중요한 위치에 있다.
개도국과 선진국의 입장을 다 이해하고 있다. 개도국과 선진국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는 아주 중요한 파트너다.

pride@fnnews.com 이병철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