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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전기요금의 난(亂)

정상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6.17 17:12

수정 2019.06.17 17:12

[여의도에서] 전기요금의 난(亂)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논쟁이 뜨겁다. '불편한 진실'은 없는가. 들여다보자.

주택용 전기에만 누진제가 도입된 것은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중화학공업 육성 등)이 한창이던 1974년이다. 1차 오일쇼크(1973년)로 유가가 급등하자, 주택용 전기사용(1970~1973년 연평균 26.4% 증가)을 억제하려는 게 이유였다. 전제는 '소득 수준과 전기사용량은 비례한다'였다. 당시 5인 이상 가구가 60%를 넘었다. 누진제는 그간 9차례나 강화(누진율 19.7배), 완화(4.2배)가 반복됐다.
가장 최근인 2016년 말 정부는 전력사용량을 200㎾h씩 3단계로 누진구간을 줄였다. 1단계(200㎾h 이하)는 공급원가 대비 59.8%(93.3원)로 했다. 이때 '저소득층으로 간주되는' 1단계 사용자는 요금이 올라간다는 이유로 '필수사용량 보장공제(2500~4000원)'를 해줬다. 실질적인 1단계 요금은 56.6원(원가 대비 36.3%). 하지만 공제 대상자(약 892만가구)의 98%는 사회적 배려계층이 아니었다.

누진제 도입 45년, 가구구성은 역전됐다. 5인 이상 가구는 5.8%뿐이고 2인 이하 가구는 55.3%에 달했다(2017년 인구총조사). 전기사용은 소득보다 가구 규모의 영향이 더 컸다. 전력사용이 증가할수록 4~5인 이상 가구 비중(26.6%→42.0%→58.1%)은 커졌다. 누진 1단계 사용자의 81.5%는 소득이 1분위 평균소득을 넘었다(감사원 조사 2019년 4월).

정부는 누진제 개편을 위해 이달 초 선택지 3개를 꺼냈다. △7~8월 누진구간 확대(1안) △축소(2안) △완전 폐지(3안)다. 셋 중 하나, 이달 말에 결정해 7월 시행한다. 하지만 그 방안이 매우 협소하고 무책임하다. 여름철에 가구별 얼마의 할인혜택이 있다, 총 할인액이 몇 천억원이라는 등 '특별할인'만 의도적으로 부각했다. 가구구조 변화에 따른 합리적 요금, 최저사용할인제도 실효성 등은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것이다. 이유는 참으로 궁색했다. 정부와 한전, 전문가 태스크포스(TF)는 "전기사용자 관련 정보가 부족했다"고 둘러댄다. 이 말대로라면 기초자료도 없이 누진제를 개편하겠노라 국민을 속인 셈이다.

냉정히 보자. 정부는 누진제를 지금(2019년 문재인정부 3년차) 폐지할 의지가 없다고 봐야 한다. 누진제를 폐지코자 했다면 전기사용이 봄가을 대비 50% 이상 급증하는 여름 직전,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다. 누진제 폐지 땐 1400만가구(300㎾h 이하 사용)의 전기요금이 오르기 때문이다. 그 역풍을 정부가 감당할 수 있을까. 전기요금 인상이 없다고 단언한 탈원전 에너지전환 정책 실패론이 불거진다.

전기 독점판매사업자 한전도 무기력하다. 올 6299억원 영업적자(1·4분기)를 낸 한전이 여름철 할인 땐 최대 3000억원을 떠안아야 한다. 궁지에 몰린 한전은 급기야 철저히 감춰왔던 '전기요금 원가 내역'을 공개하겠다고 했다가 다음 날 바로 꼬리를 내렸다. 이토록 사안이 위중했다면 한전이 왜곡된 전기요금체계 개편을 위한 설득력 있는 기초 준비를 해왔는지 묻고 싶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복지부동이다. 탈원전을 지지하는 시민단체조차 "요금정책을 포기하고 에너지 전환을 실현하려는 것은 자기 기만"이라고 날을 세우고 있지 않은가. 주택용뿐 아니라 값싼 산업용 경부하요금을 독점(전체의 1.5%가 심야전력 63% 사용)하는 소수 사용자, 단속에도 버젓이 '개문 냉방영업'하는 일반용 사용자의 전기요금은 과연 합리적인가. 정책은 신뢰를 기반한다.
왜곡을 알면서도 합리화하지 못하는 정부가 지속가능한 에너지전환을 약속할 수 있을까. 의문이 깊어진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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