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통일보다 경제가 먼저다"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6.19 17:30

수정 2019.06.19 18:13

보사硏 여론조사서 77.1%
통일 앞서 경제력 키우고 북한 민주화 이끌라는 뜻
[구본영 칼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동요가 있다. 그 애틋한 가사와 선율에 공명했던 정서는 시나브로 메말라가는 건가. 국민 10명 중 8명꼴로 통일보다는 경제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며칠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공개한 설문조사의 골자다. '통일과 경제 중 하나를 골라 해결해야 한다면 경제 문제를 택하겠다'는데 전체 응답자(3873명)의 77.1%가 응답한 것이다.

보사연의 조사 결과는 여러모로 사뭇 놀랍다. '통일을 위해 조금 못살아도 된다'는 항목에 53.2%가 반대하는가 하면 '남북한이 한민족이라고 해서 반드시 하나의 국가를 이룰 필요는 없다'는 설문에는 55.9%가 동의했다.
예전의 통일지상주의는 이제 박제된 낡은 구호로 느껴질 정도다.

이는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어쩌면 통일보다 김정은 정권과의 평화 공존에 방점을 찍는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도 얼마간 영향을 미쳤을 법하다. 평창겨울올림픽을 계기로 실시된 한 여론조사(2018년 2월, 민화협과 한국리서치)에서도 88.2%에 해당하는 국민이 "통일을 미루더라도 평화 유지가 더 중요하다"고 응답할 정도였으니….

현 정부 들어 평화 이벤트와 담론은 잦고 무성했다. 2년 사이 2차례 미·북, 3차례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의 대전제인 비핵화 협상은 롤러코스트를 탄 듯 기대치만 극대화했다가 원위치됐다. 그사이 국민의 '집단지성'이 통일이 쉬이 이뤄지기 어려움을 알아차린 격이다. 북한의 '우리 민족끼리'라는 구호도 북핵 제재를 피해 세습체제를 지키려는 시간벌기용임을 덤으로 간파하면서….

그렇다고 통일이 영영 오지 않으리라고 비관할 까닭도 없다. 지난 1989년 서울에서 만났던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의 일화가 생각난다. 당시 그는 독일 통일전망을 묻자 "글쎄, 운명의 여신이 미소 짓는다면 5년 내에…. 어쩌면 우리 생애엔 어려울지도"라고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그 후 1년도 안 돼 통독 열차는 종착역에 닿았다. 애초 브란트의 사민당 정권도 통일보다 동독과의 평화 공존을 지향했었다.

그러나 통독은 역사적 필연과 우연이 교직되면서 예고 없이 다가왔다. 그 현장을 지켜본 미국 외교관 윌리엄 스마이저가 최근 펴낸 '얄타에서 베를린까지'에 기록된 내용이다. 그는 통독의 필연적 조건으로 동독·소련을 압도한 서독·서방의 경제력 등 힘의 우위를 꼽았다. 양독 교류 과정에서 동독 주민들이 바깥세상의 진실을 알 게 된 건 부차적 조건이었다. 후자는 브란트, 전자는 초대 총리 콘라드 아데나워의 공이었다. 이를 변증법적으로 통합해 기민당의 헬무트 콜 총리가 통독을 완성했다.

말로만 평화통일을 읊조린다고 한번 식은 국민의 통일 열망이 쉽게 달아오를 리는 없다. 그렇다면 통일보다 경제를 우선시하는 여론의 함의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 경제력을 키워 '언젠가는' 올 통일에 실질적으로 대비하라는 뜻일 듯싶다. 작금의 현실이 그래서 걱정스럽다. 소득주도성장론 등 검증 안 된 정책과 비생산적 복지로 경제활력은 떨어지고 나라 곳간도 비고 있어서다.


문재인정부는 '평화가 경제다'라는 구호와 함께 남북경협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분단 관리에만 치중해 북한의 민주화나 주민 인권개선은 등한시하는 인상이다.
국책연구기관이 만든 '북한 인권 백서'조차 공개를 미룰 정도로. 북한 체제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소홀해선 통일은 요원한 일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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