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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내년 최저임금 반드시 동결… 기업투자 확대에 공들여야" [특별대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6.20 18:22

수정 2019.06.20 18:22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에게 듣는다
경제 부진의 원인은
한국, 수출주도 성장 끝나 복지로 돈 풀어 소득 늘려
최저임금·주52시간 정책도 저성장·저고용 키운 셈
'소주성' 버려야 하나
방향 지키되 정책 손봐야..친노동·친기업 목표로
기업 생산·투자 늘려줘야..핵심은 바로 '규제개혁'
빈부격차 해법은
전체소득중 가계비중 증가..양극화 구조 변화하는 중
성장률 낮아도 고용 활발한 '양질의 저성장' 정책 펴야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0일 서울 평창동 자택 인근에서 파이낸셜뉴스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문재인 대통령 대선캠프 싱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 자문위원장을 지낸 박 전 총재는 '내년 최저임금 동결'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진=김범석 기자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0일 서울 평창동 자택 인근에서 파이낸셜뉴스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문재인 대통령 대선캠프 싱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 자문위원장을 지낸 박 전 총재는 '내년 최저임금 동결'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진=김범석 기자
"최저임금의 충격을 줄이려면 내년엔 동결해야 한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 인근에서 지난 10일 파이낸셜뉴스와 만난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의 첫 마디는 단호했다.
박 전 총재는 문재인 대선 캠프에 합류해 싱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의 자문위원장을 맡았다. 현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 원안을 만들었다. 이 같은 이력을 가진 박 전 총재가 최저임금 인상에 확고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은 의외였다.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정책도구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서 큰 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고용침체를 불러오는 등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했다. 박 전 총재는 현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에 공을 들이는 만큼 기업투자 확대에도 적극 나서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고 했다. '반기업' 정부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속도를 조절하고, 기업투자 확대에 공을 들일 때 경제가 다시 정상궤도를 찾을 수 있다고 봤다. 아울러 성장 과정에서 부동산 가격이 지나치게 상승해 국민의 삶의 질이 악화되는 '빈곤한 성장'이 나타나지 않게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담=김규성 경제부장

―우리 경제가 어려움을 겪는 근본원인은.

▲우리 경제가 선진국 단계로 진입하면서 성장엔진을 수출에서 내수로 바꾸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수출이 위축되니깐 제조업이 부진하고 이는 다시 투자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수출이 10% 늘면 내수가 2%만 받쳐줘도 6%의 성장이 나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수출이 0%대로 둔화되면서 내수가 3% 늘어난다고 해도 성장률은 2%에 미치지 못한다. 여기에 저출산으로 올해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면서 저성장·저고용·양극화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수출주도 경제성장이 종료됐다면 앞으로 어떻게 성장해 가야 하나.

▲성장방식을 수출에서 내수 주도로 바꿔야 한다. 내수 주도 성장을 위해서는 국민 소비 증대가 필수적이다. 산업 측면에서는 제조업도 적극적으로 해야 되겠지만 결국 성장잠재력이 큰 서비스업 발전이 요구된다. 의료와 보건, 복지, 교육, 관광, 금융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이 경제를 주도하도록 산업구조를 바꿔야 한다. 여기에 더해 인공지능(AI)이나 의료산업, 생명과학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산업도 적극 육성해야 한다.

―당면한 경제난이 정부의 정책실패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전 정부와 현 정부 모두 정책실패의 책임이 있다. 현 정부는 최저임금과 노동시간 단축과 같은 정책이 잘못됐다. 실업과 양극화 문제를 심화시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저임금 인상의 충격을 줄이려면 내년에는 동결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도 탄력근로제(일정 기간 내에 근로시간을 늘리고 줄이면서 조절하는 제도)와 함께 가야 한다. 일을 더 하고 소득을 올리겠다는 사람들을 제한하니까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이 줄어드는 것이다.

―경제성장률이 2%대로 추락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경제의 현주소는.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을 2%대 초반으로 본다면 지난해 우리 경제가 2.7% 성장했고, 올해 2%대 초반 성장을 보인다면 양호하다고 봐야 한다. 더구나 세계 경제는 지난 2017년을 정점으로 침체국면에 있고, 미·중 무역갈등 격화도 추가됐다. 올해 선진국 전체 성장률이 1.7%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경제가 선진국으로 진입하게 되면 과거와 같은 7~8%의 고성장은 어렵다. 성장률 숫자에 매달리지 말고 저성장이지만 일자리와 양극화 문제가 없이 국민의 삶이 좋아지는 '양질의 저성장'을 추구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소득주도성장이 문제점을 낳고 있는데.

▲수출로 기업소득이 늘어나면 투자를 통해서 가계소득으로 전환되는 선순환 구조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복지 확대 등의 방법으로 정부가 가계 소득을 늘려주는 정책이다. 수출 주도 성장이 어려우니까 내수를 성장시켜 뒷받침하겠다는 의도는 좋았지만 정책을 쓰는 과정에서 서툰 측면이 있었다.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등 과도하게 진행되면서 가계 소득이 줄고 빈부격차를 키우는 결과로 이어졌다. 내년 최저임금을 동결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소득주도성장을 버리는 것은 안 된다. 가계소득을 늘려 내수를 키우는 정책 방향은 맞지만 구체적인 정책수단이 잘못됐다는 의미다.

■ 약력 △서울대 상대 △한국은행 △1974년 뉴욕대 경제학 박사 △중앙대 정경대학 경제학과 교수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건설부 장관 △대한주택공사 이사장 △삼성물산 사외이사 △한국경제학회 회장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 △한국은행 총재 △중앙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 약력 △서울대 상대 △한국은행 △1974년 뉴욕대 경제학 박사 △중앙대 정경대학 경제학과 교수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건설부 장관 △대한주택공사 이사장 △삼성물산 사외이사 △한국경제학회 회장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 △한국은행 총재 △중앙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최근 위축된 기업의 분위기가 경제 전반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는데.

▲친노동·반기업 정부는 있을 수 없다. 친노동·친기업 정부가 맞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한다고 해서 기업의 성장과 투자를 소홀하게 하면 안 된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가계소득이 기업소득을 유발하는 이른바 '분수효과'이며, 수출로 발생한 기업수익이 가계로 흘러드는 것은 '낙수효과'다. 과거 우리 경제가 낙수효과에만 의존했다면 앞으로는 낙수효과와 분수효과를 50대 50으로 균형을 맞추는 방식으로 경제성장을 해야 한다. 이 같은 측면에서 보면 정부가 기업의 생산과 투자에 소홀했다. 특히 기업 투자를 늘리기 위해 정부가 주력할 부분은 규제개혁이다. 아울러 노동 유연성을 높이고 탄력근로제 실시, 호봉제를 직능급제로 바꾸는 등 노동개혁도 추진해야 한다. 최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기업을 방문하면서 많이 균형을 찾아가고는 있어 보인다.

―일본은 저성장에도 고용창출이 계속되고 있는데 우리와 차이점은.

▲일본과 우리나라의 차이는 내수 규모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일본의 내수시장은 우리나라의 4배다. 따라서 수출이 부진해도 일본 기업들은 내수시장을 보고 투자를 할 수 있다. 투자가 늘어나면 고용도 창출된다. 반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수출이 부진하면 투자를 줄인다. 규모가 작은 내수를 보고 투자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투자가 부진하면 고용도 위축된다. 이에 따라 현 시점에서 정부는 고용과 관련기업의 투자가 늘어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울러 인구도 고용에 영향을 주고 있다.

―심화되는 양극화 해법은.

▲기업 투자를 촉진해 고용을 확대하는 한편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강화해 저소득층 가계의 소득을 보호 및 확대해줘야 양극화 문제가 완화될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을 실패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최종소비지출을 보면 2%대에 머물던 것이 지난해에는 3.5%로 높아졌다. 소비가 늘어난 덕분에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2.7%를 기록한 것이다. 또 지난해 전체 소득 가운데 가계 비중이 증가했다. 전체 소득에서 노동소득 비중도 증가했다. 이처럼 소득이 증가하면서 우리나라의 양극화 구조는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부동산 문제는 어떻게 접근해야 되나.

▲수십년 동안 우리나라는 부동산이 폭등하면 투기를 억제했고 침체에 빠지면 부양하는 방법을 되풀이했다. 그 결과 지난 50년 동안 물가가 30배 오른 데 비해 집값은 3000배나 뛰었고, 사람들은 부동산을 투기 수단으로 보게 됐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동산 가격이 장기적으로 안정되는 것이다. 경제는 5% 성장하는데 집값이 20% 뛰면 국민 삶의 질이 악화되는 '빈곤한 성장'이다. 소득이 늘어도 가계의 삶은 더 나빠진다는 의미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일본의 성장률이 0%대로 낮아진 근본원인이 저출산·고령화다. 우리나라도 이제 일본과 같은 초고령사회의 문턱에 있다. 미국은 고령화 문제를 이민으로 해결했지만 우리 상황과는 맞지 않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결혼해서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이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립되도록 해야지 해소될 수 있다. 출산부터 양육, 교육, 취업 등 모든 것을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 내에서도 기혼자에 대한 차별이나 승진 불이익을 없애야 극복될 수 있다.

정리=coddy@fnnews.com 예병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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