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팅, 스태프 구성, 무대 연출에 새로운 시도


연극 ‘묵적지수’가 공연 도중 사고로 6월 26일~30일 공연을 취소한다고 26일 밝혔다.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는 공연 전날인 6월 25일 언론 및 네이버 유저를 상대로 ‘묵적지수’ 전막 공연을 개최했다.
하지만 공연 도중 사고로 개막을 연기했고 이후 7월 4일~7일 낭독 공연 형태로 선보인다고 밝혔다. 낭독 공연은 무료며, 앞서 유료 예매한 관람객에게는 110% 환불 조치한다.
'묵적지수'는 제8회 벽산희곡상 수상작으로, 캐스팅, 스태프 구성, 무대 연출 등에 있어 새로운 시도를 한 작품이다.
초나라 혜왕 50년(기원전 439년), 춘추전국시대 사상가 묵자(본명 묵적)가 초나라의 침략을 막기 위해 초혜왕과 모의전을 벌였다는 고사가 바탕이다. 진짜 전쟁을 막기 위한 가짜 전쟁을 다뤘다.
이날 공개된 공연은 2500년전 중국이 작품의 무대이나 현대화한 의상과 배우들의 독특한 표현방식으로 신선함을 안겼다. 또 묵자, 초혜왕 등 주역에 여성을 기용한 ‘젠더 프리’ 캐스팅으로 눈길을 모았다.
무대 또한 보통의 공연과는 다르게 원형 무대를 사용해 사방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배우들 또한 원형의 무대를 중심으로 사방에 배치된 객석을 확장된 무대 삼아 연기, 새로운 연극 관람의 경험을 제공했다.
이래은 연출은 젠더 프리 캐스팅을 한 이유로 “미투 이후 여성들에게 다양한 역할을 연기할 기회를 주는 게 창작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전쟁 이야기가 2019년 현재 어떤 의미를 지니나? 오늘날 전쟁을 치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러한 질문을 통해 지난해 ‘미투’가 떠올랐다”는 것이다.
서민준 극작가는 “2500여년전 중국의 역사에서 여성의 존재를 찾기란 너무 어려웠다. 남성 위주 서사일 수밖에 없었는데, 이래은 연출이 젠더 프리 캐스팅을 한다고 해서 무척 반가웠다”고 부연했다.
“묵가는 나이 성별 계급을 구분하지 않고 인간은 모두 평등하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상가 집단이었다. 2019년 묵가는 어떤 사람들일까?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무대 안팎이 모든 것을 고려했다”는 것이 이래은 연출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묵적지수’는 관객에게 보이는 캐스팅 영역뿐만 아니라 스태프를 구성하는데 있어서도 기존의 질서를 깼다. 젊은 스태프가 연장자를 보조하는 전통방식이 아니라 그 반대로 스태프를 구성한 것이다.
“책임감 있는 역할을 20대가 하고, 연장자가 서포트를 하는 등 기존 방식과 다르게 꾸렸다. 작업의 효율성이 높아졌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작업에 임하는 우리의 사고방식이나 태도의 변화는 있었다.”
작품은 2500년 전, 강대국에 맞서 전쟁을 막아내려는 의지를 다진 묵인들을 조명한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능력으로 간주한 ‘힘’의 정체를 의심하며, 승자독식 체제로 편성된 인간 사회의 모순을 짚어본다.
‘묵적지수’는 전쟁 서사를 담고 있지만 몇몇 영웅을 부각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각 등장인물들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사회적 약자도 주체적으로 변화와 혁명을 주도할 수 있다고 인식한 묵가의 사상과도 맞닿는다.
한 배우가 큰 배역과 작은 배역을 모두 맡은 것도 작품의 주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이래은 연출은 “특히 병사 캐스팅에 신경을 썼다. 한 사람에게 양쪽 편의 크고 작은 배역을 모두 맡긴 이유는 누구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