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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은하수를 마시고 있어요" [김관웅 선임기자의 '비즈니스 와인']

김관웅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7.04 18:59

수정 2019.07.04 18:59

(3) 와인의 경제학 자연이 준 선물 샴페인
1670년 프랑스 상파뉴 지방에서 시작..기후·발효시기 우연히 맞아떨어져
화이트와인과 비슷하지만 병속에서 2차 발효
'두번 만들어지는 와인'이라 불려..기포 미세하고 오래갈수록 좋은 샴페인
"형제님, 어서 와 보세요. 저는 지금 은하수를 마시고 있어요." 1670년 어느 봄 날, 프랑스 상파뉴(Champagne) 지방에 있는 베네딕토 오빌리에 수도원의 수도사 피에르 페리뇽(Pirre Perignon)이 와인 저장고 안에 쭈그려 앉은채 깨진 병을 들고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피에르 페리뇽은 미사에 사용할 와인을 고르기 위해 와인 저장고를 둘러보던 중 저장고 입구쪽에서 와인 병 하나가 큰 소리를 내며 터졌습니다. 깨진 병 사이로 거품과 함께 흘러내린 와인을 호기심에 입에 넣어봤는데 이 맛이 기가막혔던 것이죠. 입안에서 퍼지는 그윽한 이스트향과 입속을 즐겁게 만드는 기포가 특징인 샴페인이 인류의 품으로 찾아온 순간입니다.

프랑스 상파뉴 베네딕토 오빌리에 수도원의 수도사로 샴페인 연구에 지대한 업적을 남긴 피에르 페리뇽. 위키피디아
프랑스 상파뉴 베네딕토 오빌리에 수도원의 수도사로 샴페인 연구에 지대한 업적을 남긴 피에르 페리뇽. 위키피디아

오빌리에 수도원이 있는 상파뉴에서는 봄이 되면 와인 병이 터지는 일이 잦았습니다. 상파뉴는 북위 50도에 위치한 아주 서늘한 기후대를 가진 곳이어서 포도가 천천히 익어가 수확시기가 늦습니다. 그러다보니 발효가 추운시기에 시작되고 발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추위가 찾아와 발효가 멈춥니다.
이후 봄이 오면 병 속의 이스트가 다시 발효를 시작하면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고 병속의 압력이 높아지자 폭발하게 된 것이죠. 사람들은 이를 '악마의 장난'으로 여기며 쉬쉬했지만 사실은 자연이 인간에게 준 '진귀한 선물'이었습니다.

피에르 페리뇽은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샴페인을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오늘날 샴페인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제조법들을 하나하나 만들어냅니다. 우선 탄산가스의 압력을 견딜 수 있도록 두꺼운 유리병을 사용하고 코르크, 철사줄을 활용한 샴페인만의 밀폐기술을 개발합니다. 이로인해 샴페인의 제조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하게 됩니다. 피에르 페리뇽은 상파뉴에서 처음으로 블렌딩 기법을 도입했습니다. 피노 누아, 피노 뮈니에, 샤르도네 등의 포도 원액을 섞어 숙성시키면 맛이 훨씬 깊어진다는 것을 안 것이죠.

포도를 수확해 착즙을 할때 아주 천천히 누르는 기술도 개발합니다. 검은 포도인 피노 누아, 피노 뮈니에도 이같은 방식으로 느리게 착즙하면 포도 껍질에 있는 색소가 추출되지 않아 과즙이 무색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적포도 품종으로 화이트 와인을 만들게 된 것도 피에르 페리뇽 덕분입니다. 이밖에도 1715년 사망할때까지 그가 연구한 샴페인 제조기술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후 피에르 페리뇽은 '돔 페리뇽'으로 불리게 됩니다. '돔(Dom)'은 성직자의 최고 등급인 '도미누스(Dominus)'를 줄여 부르는 말로 그의 업적을 인정받아 성직자의 최고의 자리에 오르며 이렇게 불리게 된 것이죠.

■병에서 숙성시키는 독특한 와인

샴페인은 정말 고가의 와인입니다. 웬만큼 검증된 품질의 와인을 집어들면 한 병 가격이 10만원을 가볍게 넘깁니다. 또 한병에 수백만원까지 하는 최고가 샴페인도 즐비합니다. 샴페인 가격이 이처럼 비싼 것은 와인을 만드는 과정이 아주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입니다. 샴페인은 병에서 숙성을 통해 만들어지는 독특한 와인입니다. 일반적으로 와인은 오크통이나 스틸통 등 별도의 용기에서 숙성을 거쳐 병입되는데 샴페인은 제대로 된 숙성이 병에서 이뤄집니다. 일반 와인은 발효가 끝나면 이스트 찌꺼기를 건져내고 오크통 등 저장용기에서 숙성을 시킵니다. 그러나 샴페인은 1차로 발효를 시킨 후 다시 당분을 넣어 2차 발효를 진행합니다. 발효가 끝나도 병속에 이스트 찌꺼기를 남겨둔채 병속에서 추가 숙성을 진행한 후 출시 직전에서야 이를 제거합니다. 샴페인 특유의 이스트 향이 바로 여기서 온 것입니다.

샴페인을 만드는 과정은 정말 복잡합니다. 우선 포도를 수확해 착즙을 하고 별도의 용기에서 발효를 진행합니다. 이후 병입을 하게 되는데 여기까지는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과정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병입 과정에서 일반 화이트 와인과 다르게 당분과 효모를 첨가합니다. 병속에서 2차 발효를 시키는 것입니다. 2차 발효는 수개월동안 진행되는다음 편은 '실수와 우연이 빚은 명품, 아이스와인'이 이어집니다.데 발효가 끝나면 병에 효모의 찌꺼기가 남아 뿌옇습니다. 이 때문에 와인병을 거꾸로 세워놓는 틀을 만들어 일정 시간마다 계속 돌려가며 병 목에 찌꺼기가 쌓이도록 하는 작업을 반복적으로 진행합니다. 그런 다음 섭씨 영하 25~30도의 냉각 소금물에 병목을 잠기게 해 얼린 뒤 충격을 가하면 찌꺼기가 병 밖으로 튕겨져 나옵니다. 이제 와인이 맑은 색깔을 띱니다. 이 작업을 '데꼬르주망(Le Degorgement)'이라고 합니다.

이후 부족해진 와인을 다시 채워넣는 '도자주(Dosage)' 작업을 진행한 후 철사고리가 달린 병마개를 씌워 단단하게 봉인하면 샴페인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와인을 만드는 과정도 복잡하고 일반 와인과 다르게 두번의 숙성이 이뤄지기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두번 만들어지는 와인이라고도 표현합니다.

■샴페인은 빈티지를 표기하지 않는 와인

상파뉴는 서늘한 기후 특성 때문에 포도의 신맛이 강하고, 천천히 익어가기 때문에 떼루아의 성분을 차곡차곡 포도알에 담아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덕분에 아주 세심하고 예리한 맛을 내는 샴페인이 생산됩니다. 그러나 상파뉴는 워낙 한랭한 곳이어서 매년 좋은 포도를 수확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해의 포도로 만든 와인을 섞어 사용합니다. 이 때문에 일반 와인과 다르게 빈티지를 표기하지 않습니다. 다만 특별히 어느 해에 유독 작황이 좋았다고 판단될때만 예외적으로 그 연도를 기념해 빈티지 샴페인을 내놓습니다.

사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때도 와인을 숙성시키면 탄산가스가 발생해 기포가 있는 스파클링 와인으로 익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 프랑스 남서부의 리무 지역에서는 상파뉴보다 100년 앞서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샴페인은 상파뉴에서 본격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습니다.

이 때문에 프랑스에서 생산된 스파클링이라고 할 지라도 상파뉴에서 전통적인 '샴페인 방식(Methode Champanois)'을 따라 생산한 것만 '샴페인'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제조된 스파클링 와인은 크레망(Crement), 뱅 무쐬(Vin Mousseux)로 구분해 표기합니다. 또 이탈리아에서도 스파클링 와인이 나오는데 이를 '스푸만테(Spumante)'라고 부릅니다. 독일에서는 '젝트(Sekt)', 스페인에서는 '까바(Cava)'로 부릅니다. 모두 같은 스파클링 와인이지만 생산방식은 조금씩 다릅니다.

샴페인은 입안을 살짝 자극하는 기포가 미세할수록, 또 기포가 오래갈수록 좋은 와인입니다. 입안에 살짝 머금어 기포를 느껴가며 살살 굴려가며 신맛도 음미한 후 삼키면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입속에서 너무 오래 머금으면 온도가 올라가 맛이 달라질수 있습니다.

프랑스 왕 루이15세의 애인이던 마담 드 퐁파두르는 유명한 샴페인 애호가였습니다. 샴페인을 너무 좋아해 샴페인 잔을 잡으면 바닥에 놓는 법이 없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퐁파두르 샴페인 잔이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퐁파두르 샴페인 잔은 바닥에 세울 수 없도록 잔 받침대를 만들지 않아 손으로 계속 들고 있어야 하는 잔 입니다.


샴페인은 이처럼 매력적이고 로맨틱한 와인입니다. 더위가 시작되는 요즈음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이기도 합니다.


kwkim@fnnews.com 김관웅 부동산 선임기자

▶다음 편은 '실수와 우연이 빚은 명품, 아이스와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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