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민 칼럼]

"집배원, 당신을 응원합니다"

사상 초유의 총파업 움직임
정부 중재로 우편대란 피해
그들의 소중한 꿈 지켜줘야

이탈리아 영화 '일 포스티노'(1994년)에는 자전거를 타고 섬마을을 누비는 집배원이 나온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집배원의 우정을 그린 이 영화는 한 편의 시를 읽는듯 아련하다. 오로지 네루다의 우편물을 배달하기 위해 고용된 어부의 아들 마리오는 네루다와 교류하며 스스로 시인이 되어간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과 아버지의 고달픈 고기잡이,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 뱃속 아기의 숨소리까지 모든 것이 시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간다. "시가 나를 찾아왔어/난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몰라/그건 말도 아니었고 침묵도 아니었어"(네루다, '시')라고 영화는 노래한다.

집배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한국영화도 있다. 전도연·박해일 주연의 '인어공주'(2004년)는 당시로서는 낯선 타임슬립 영화로, 스무살 적 엄마의 첫사랑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과거로 간 딸은 빨간색 자전거를 타고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젊은 집배원을 만난다. 엄마의 첫사랑, 아버지다. 섬마을로 전근 온 아버지는 해녀인 젊은 엄마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사랑을 키운다. "미처 드리지 못한 말씀이 있습니다.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다시 뭍으로 간 아버지에게 삐뚤빼뚤 쓴 엄마의 편지를 보며 딸은 왈칵 눈물을 쏟는다.

두 영화를 다시 떠올린 까닭은 얼마 전 총파업을 결의한 집배원들 때문이다. 현실 속 그들의 삶은 영화처럼 달달하지만은 않다. 현실은 낭만이 아니다.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집배원들은 세상에서 가장 긴 노동에 시달린다. 지난해 꾸려진 집배원노동조건개선기획추진단에 의하면 집배원들의 연평균 노동시간(2017년 기준)은 무려 2745시간이다. 국내 임금노동자 평균보다 693시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는 982시간 더 길다. 하루 8시간을 기준으로 이를 다시 계산하면 각각 87일, 123일씩 더 일한 셈이다.

이러다보니 근무 중 사망하는 일도 아주 흔하다. 지난 2014년부터 현재까지 101명(올해 9명)의 집배원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 같은 기간 과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집배원 수만도 24명에 달한다. 가장 최근인 지난달 19일에도 충남 당진우체국 소속 집배원이 집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5월 끝내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한 무기계약직 집배원의 머리맡엔 정규직 응시원서가 놓여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린 고인의 형은 "동생이 쓴 응시원서에는 '행복과 기쁨을 배달하는 집배원이 되고 싶다'는 꿈이 적혀 있었다"고 증언했다.

집배원들이 사상 초유의 총파업을 선언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에서나마 그들을 지지한 건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통상적으로 파업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은 부정적이게 마련이다. 남의 요구가 이뤄질 때까지 나의 불편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데 이번 경우는 좀 달랐다. 한 시사주간지 조사에 따르면 집배원들의 파업결의 이후 나온 뉴스 댓글 4500여건을 검토한 결과 '응원' '지지' 같은 긍정적 단어 노출이 많았다. '힘들다' '고생' '과로사'처럼 집배원들의 노고에 공감하는 단어의 사용 빈도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다행스럽게도 파업은 철회됐다. 집배원들은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정부는 집배원들에게 988명 증원, 주5일 근무제 시행 등을 약속했다.
이동호 우정노조위원장은 "우리의 요구가 100% 수용되지 않았지만 현장에 복귀해 보편적 우편서비스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남은 건 그 약속이 잘 이행되는지 지켜보는 일이다. '행복과 기쁨을 배달하고 싶다'는 그들의 작은 소망이 또다시 짓밟히지 않길 바란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