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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청거리는 ‘주식회사 독일’… 수출둔화에 대기업 악재 겹쳐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7.14 18:08

수정 2019.07.14 18:08

과감한 투자 등 신속 대응 실패..‘디지털 경제’ 혁신 전환도 차질
도이체방크 ‘감원’· 자동차 ‘위기’..'탄탄'중소기업은 빈부격차 요인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 거래소의 도이체방크 전광판이 켜져있다. 하루전인 7일 도이체방크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오는 2022년까지 투자은행을 포함한 구조조정과 함께 직원 1만8000명을 감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AP뉴시스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 거래소의 도이체방크 전광판이 켜져있다. 하루전인 7일 도이체방크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오는 2022년까지 투자은행을 포함한 구조조정과 함께 직원 1만8000명을 감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AP뉴시스
독일 경제가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다. 세계 경제둔화와 미국과 중국간 무역전쟁으로 성장 엔진 수출이 둔화하고 있고, 대기업들의 잇단 판단 실수와 스캔들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반면 독일 경제의 핵심인 중소기업들은 아직 탄탄하지만 대부분 가족소유 형태로 빈부격차를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독일 경제가 안팎으로 어려워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현지시간) '주식회사 독일'이 국내 경제 둔화, 기업의사 결정 구조에 대한 의구심,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 차질 등으로 휘청거리고 있다면서 이같이 보도했다. 지난 한주 동안만 해도 온갖 악재가 끊이지 않았다.

독일 최대 은행 도이체방크는 대규모 감원과 함께 세계 주요 투자은행으로 발돋움한다는 20년 간의 야심을 포기했다. 독일 최대 화학기업 바스프(BASF)는 순익전망을 급격히 낮춰잡았다.

미국 농약·종자기업 몬산토를 인수한 뒤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세계적인 제약사 바이엘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인수 당시 문제가 됐던 몬산토의 제초제 '라운드업'에 발목이 잡혀 줄소송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독일 경제 대장주인 자동차 산업이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 이를 방증하듯 지난주 하랄드 크루거 BMW 최고경영자(CEO)는 사임의사를 밝혔고, 메르세데스 벤츠를 만드는 다임러는 지난주를 포함해 채 한달도 안되는 기간 동안 순익경고를 2차례나 내놨다. 전기차·자율주행차 개발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가운데 경유차 스캔들에 세계 자동차 수요 둔화가지 겹치면서 위기에 몰려 있다.

자동차 산업이 비틀거리면 이는 곧바로 서비스업체와 부품공급 등 전후방 산업에 고스란히 충격을 준다. 독일 대기업들은 소프트웨어 업체 SAP부터 철강업체 티센크루프에 이르기까지 대대적인 감원을 발표하고 있고, 닥수지수 편입 대기업 3개 가운데 1개는 순익경고나 감원 또는 구조조정, 심각한 법정 소송, 당국의 조사에 직면해 있다. 회계·컨설팅업체 언스트앤드영은 최근 세계에서 가장 가치있는 기업으로 간주됐던 독일 기업들이 이제 "중요성을 상실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DVAM 자산운용의 마르쿠스 쇤 이사는 "독일 기업들이 지금 같은 상황에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탄탄한 것 같았던 독일 기업들이 수세에 몰린 것은 이같은 거시경제 변화와 내부 스캔들 뿐만 아니라 기업지배구조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감독이사회가 그것이다. 노조가 절반을 차지하는 막강한 감독이사회는 독일 기업의 의사결정에 참여해 그동안 노사분쟁을 막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같은 긍정적인 효과와 달리 지금처럼 경제를 둘러싼 환경이 급변할 때는 과감한 투자나 신속한 의사결정을 막는 심각한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컨설팅업체 브룬스빅 그룹의 크리스티안 로렌스는 " 독일 시스템에서는 CEO가 많은 의사결정자 가운데 한 명일 뿐이며 의사결정을 하려면 반드시 합의를 이끌어내야만 한다"면서 "위기시 신속한 대처가 가능한 강한 CEO가 있다는 점은 강점이 된다"고 지적했다.

독일과 유럽의 강도 높은 규제도 독일 기업들을 옥죄는 요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독일 정보기술(IT) 기업들은 강도 높은 독일·유럽의 개인정보 보호 규정에 묶여 유저데이터를 수집하고 저장하며, 이를 수익창출에 활용하는데 심각한 제약을 받고 있다. 페이스북, 구글 등 미국을 비롯한 나라들의 IT 기업들이 느슨한 규제 속에 혁신을 통해 경제를 빠르게 디지털화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한편 대기업들이 휘청거리는 가운데 여전히 독일 경제를 탄탄히 받치고 있는 중소기업들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가족소유 기업들로 의사결정 구조가 덜 복잡하고 주식시장 눈치를 덜 본다는 이점이 있지만 빈부격차 확대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독일 기업자산과 순익의 60% 정도를 이들 가족소유 중소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이는 유럽에서 네덜란드, 오스트리아에 이어 독일을 빈부격차가 확대되는 나라로 만들고 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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