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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한·일 갈등, 감정 접고 외교 담판으로 풀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7.15 17:27

수정 2019.07.15 17:27

죽창가·국채보상운동은 국민에 책임 전가하는 꼴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일본의 대한 수출제한이 촉발한 한·일 대치가 장기화할 조짐이다. 정부는 15일 우리 대법원의 징용 판결과 관련한 일본의 3국 중재위 구성 거부 입장을 재확인했다. 앞서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정부가 한국이 중재위 설치에 불응 시 18일을 기해 추가 제재에 들어갈 것이라고 보도했었다. 이처럼 출구 없는 대치가 양국 경제에 주름살만 깊게 하면서 공멸의 게임으로 치달을까 걱정스럽다.

벌써 양쪽 산업현장에서 피해가 감지된다. 일본산 불화수소 공급이 열흘 이상 끊기면서 삼성전자가 '컨틴전시 플랜'(비상 계획)을 수립 중이란 말이 들린다.
일제 불매운동이 본격화되면 일본 기업들도 내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일본계 브랜드 유니클로의 매출이 26% 줄어든 게 그 전조다. 만일 일본 정부가 안보상 우호국가인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게 되면 한·미·일 안보공조마저 금이 가게 된다.

이 같은 '치킨게임'이 계속되면 양국 공히 출혈이 불가피하지만, 우리 기업들이 더 큰 타격을 받는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일본에 비해 수출의존도가 훨씬 큰 데다 우리가 수입하는 일본산 핵심 소재와 부품은 대체가 어려워서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0.4% 감소하고, 연간 경상흑자는 100억달러가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런데도 정부가 사태의 엄중함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중재 요청차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난데없이 구한말의 국채보상운동을 들먹였다. 조국 민정수석은 한술 더 떠 일제에 맞선 동학농민운동을 소재로 한 운동권 가요인 '죽창가'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하지만 이처럼 말만 하고 행동은 안하는 '노 액션 토킹 온리(나토·NATO)'식 치기가 국익에 무슨 도움이 될까.

한·일 갈등은 명분에만 집착해선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한·일 간 쉽게 풀기 힘든 과거사가 쌓여 있는 게 사실이나 공통의 미래 이익을 위해 협력해야만 하는 현실도 엄연하다.
반일감정에만 기대다가 민생이 파탄 나면 그 책임을 누가 지나. 임진왜란과 구한말 때처럼 조정의 무대책이 초래한 국난의 뒷감당을 백성들이 떠안게 해선 곤란하다. 과거사 갈등은 통상교섭 레벨이 아니라 정치·외교적 차원에서 푸는 게 정도다.
정부는 사태의 도화선이 된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합리적 대안을 마련해 물밑 외교담판을 준비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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