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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한·일 방콕회담 빈손, 그래도 파국만은 막아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8.01 17:18

수정 2019.08.01 17:18

퇴로 없는 치킨게임 양상
두 나라 한발씩 물러서길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빈손으로 끝났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일 태국 방콕에서 고노 다로 일본 외상을 45분간 만났다. 고노 외상은 종전 주장을 되풀이했고, 강 장관은 한국 측 입장을 다시 설명했다. 같은 날 일본을 방문한 한국 의원단은 "구걸외교를 하러 온 게 아니다"(강창일 한일의원연맹 회장)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자민당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이 만남을 연기하더니 아예 취소해버렸기 때문이다. 의원들은 해결책은커녕 되레 감정만 상해서 돌아오게 생겼다.


일본 정부는 2일 각의를 열어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처리할 것이 확실하다. 핵심은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명단에서 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앞으로 일본에서 1100개가 넘는 전략물자를 수입할 때마다 건건이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일본 정부는 아예 수출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맘만 먹으면 언제든 한국행 수출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

한·일 통상 갈등이 불거진 뒤 우리는 줄곧 양국 정부에 타협을 주문했다. 과거사로 점철된 한·일 관계에서 완승, 완패는 있을 수 없다. 방콕 회담에서 성과가 없었다고 낙담할 일도 아니다. 사실 강제징용 배상과 수출규제를 둘러싼 마찰은 오로지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만이 풀 수 있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승인하지 않는 한 두 나라 외교장관들이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문제는 문·아베 간 대립이 치킨게임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지금으로선 누구도 쉽게 물러설 것 같지 않다. 이럴 땐 제3자의 중재가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은 미국밖에 없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 당국자의 말을 빌려 미국이 한·일 양국에 일시 분쟁중지(스탠드스틸)에 합의할 것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스탠드스틸은 꽉 막힌 현안에 숨통을 트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이를 진지하게 검토하기 바란다.

아베 총리에 당부한다. 현재 백색국가는 27개국이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유일하다. 리스트에서 한국을 빼는 결정은 자칫 자충수가 될 공산이 크다. 한국의 기술력과 민족적 자긍심을 얕보아선 안 된다. 오는 10월에 일왕 즉위식, 내년 7~8월 올림픽을 개최하는 나라의 위상에도 걸맞지 않다. 문 대통령에도 당부한다.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은 녹록지 않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업들은 애가 탄다. 국가 경제를 위해 통 큰 결단이 필요하다.
때에 따라선 한 발 물러서는 것도 지도자의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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