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식품

세상을 놀래킨 ‘괴짜’같은 명품 와인의 향연[김관웅 선임기자의 '비즈니스 와인']

김관웅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8.01 18:34

수정 2019.08.01 18:40

(3)와인의 경제학
최고가의 세계, 이탈리아
솔데라·비욘디 산티·쟈코모 콘테르노 등 장인들이 상식 뒤집는 최고의 와인 빚어
부르넬로·네비올로 등 한가지 품종 사용..블렌딩 와인과 달리 경우의 수 거의 없어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몬탈치노 지방에 위치한 카제 바세 솔데라 와이너리의 주인인 지앙프랑코 솔데라가 자신의 포도밭에서 와인을 시음하고 있다. 솔데라는 토스카나의 부르넬로 와인을 궁극의 위치까지 끌어올린 입지전적인 인물로 지난 2월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타개했다. 사진=카제 바세 솔데라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몬탈치노 지방에 위치한 카제 바세 솔데라 와이너리의 주인인 지앙프랑코 솔데라가 자신의 포도밭에서 와인을 시음하고 있다. 솔데라는 토스카나의 부르넬로 와인을 궁극의 위치까지 끌어올린 입지전적인 인물로 지난 2월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타개했다. 사진=카제 바세 솔데라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 국보급 와이너리인 비욘디 산티의 주인인 프랑코 비욘디 산티가 최초의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을 불빛에 비춰보고 있다. 이 와인은 1880년대 페루치오 비욘디 산티가 육종에 성공해 처음으로 빚은 1888년 빈티지의 와인으로 아직도 생생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div id='ad_body2' class='ad_center'></div> 사진=비욘디 산티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 국보급 와이너리인 비욘디 산티의 주인인 프랑코 비욘디 산티가 최초의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을 불빛에 비춰보고 있다. 이 와인은 1880년대 페루치오 비욘디 산티가 육종에 성공해 처음으로 빚은 1888년 빈티지의 와인으로 아직도 생생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사진=비욘디 산티

흙 묻은 멜빵바지를 입은 땅딸막한 키의 한 노인이 투덜대며 포도밭을 돌아다닙니다. 포도나무를 매만지는 일꾼들의 손이 조금이라도 맘에 안들면 금세 큰 호통이 떨어집니다. 잔소리를 해대는 목소리에선 꼬장꼬장하고 불같은 성격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지하 셀러로 향하는 그의 등 뒤에서 오로지 최고의 와인을 만들어내고야 말겠다는 고집불통의 집념이 묻어납니다. 오늘도 그는 축축하고 차가운 지하셀러의 커다란 캐스크 옆에서 조각잠을 청할 예정입니다.

솔데라, 비욘디 산티, 쟈코모 콘테르노 몬포르티노 등 이탈리아의 명품 와인을 볼때면 이같은 장인의 이미지가 겹쳐집니다. 세계 최고가 와인세계는 프랑스의 독무대이지만 그래도 이탈리아에서는 상식을 뒤집는 정말 '괴짜(?)'같은 와인들이 종종 나옵니다. 바로 이같은 장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나 바롤로 등 이탈리아 명품 와인은 부르넬로(Brunello)나 네비올로(Nebbiolo) 등 한 가지 품종으로 만들어지는게 특징입니다. 한 가지 품종만으로 최고의 와인을 빚는다는 것은 여러 품종을 블렌딩하는 와인과 달리 경우의 수가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몬탈치노 지방의 '솔데라(Soldera)' 와인은 최고의 부르넬로 와인입니다. 백합꽃을 뜻하는 이름의 이 와인은 '솔데라 카제 바쎄(Soldera Case Basse)'라는 와이너리에서 나옵니다. 몬탈치노 지역에서 가장 비싸며, 미국 뉴욕의 경매시장에서 가장 선호하는 이탈리아 와인입니다. 빈티지에 따라 다르지만 한 병에 100만원 안팎에 팔리는 고가의 와인임에도 이탈리아 현지에서도 구하기 힘든 와인 중 하나입니다. 1년에 고작 1만5000병 정도로 생산량이 적기도 하지만 워낙 고정 팬이 많아 대부분 출시되자마자 물량이 동이 납니다.

솔데라 와인을 열어보면 진하지 않은 밝은 색상에 마른 과일의 향과 꽃향기가 감미로운게 특징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포도 맛 이외의 맛을 배제한 간결하고 깊은 맛과 우아한 스타일은 가히 '부르넬로의 백합꽃'이라 불릴만 합니다.

이 와인은 밀라노에서 보험중개업을 하던 지앙프랑코 솔데라가 1972년 토스카나의 황량한 풀밭을 매입해 와이너리를 만들면서 시작됐습니다. 양조장 전체 면적은 25ha에 달하지만 실제 포도밭은 9ha 정도에 불과합니다. 자연주의를 표방해 와이너리 안의 숲이나 개울을 그대로 보전하고 포도밭 주변에 정원도 조성해 포도밭이 줄어든 때문입니다. 와인을 빚는 방법도 전통을 고수합니다. 225리터짜리 프랑스 산 바릭을 쓰지 않고 150헥토리터짜리 캐스크를 사용합니다. 인위적인 오크향이 덜한 담백하고 간결한 와인 맛의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 와이너리는 별도의 온도조절 장치를 하지 않고 사계절 자연의 변화를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토스카나 대부분의 와이너리들이 현대적 스타일의 첨단 제조시설로 무장한 것과 완전히 상반되는 스타일로 와인을 만드는 것입니다.

지앙프랑코 솔데라는 지난 2월 82살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사망했지만 평생동안 몬탈치노 와인업계의 이단아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는 한평생 한치의 타협도 거부한 완고한 원칙주의자였기 때문에 주변에 적이 많았습니다. 과거 2008년 몬탈치노 지역의 일부 부르넬로 와인 생산자들이 다른 품종을 섞어 팔던 '부르넬로 스캔들'이 발생하자 내부고발자로 의심받기도 했고, 2012년에는 해고에 앙심을 품은 직원이 와이너리 셀러에 침입해 6만2000리터(250억원 상당)의 와인을 몰래 흘려버리는 사건에 큰 상처를 입기도 했습니다.

토스카나의 부르넬로 와인을 논할때 빼놓을 수 없는 와인이 또 하나 있습니다. 이탈리아 국보급 와이너리인 비욘디 산티(Biondi Santi)가 만드는 '비욘디 산티' 와인입니다. 1880년대 이 가문을 이끌던 페루치오(Ferruccio)비욘디 산티는 산지오베제의 변종인 부르넬로를 처음으로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이를 혼자 독점하지 않고 주변 마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재배법까지 전수했습니다. 이로인해 몬탈치노 마을은 토스카나를 대표하는 최고의 와인 산지로 올라서게 됩니다.

당시 토스카나에서는 산지오베제 품종으로 만든 저가 와인이 판을 쳤습니다. 대부분의 와이너리들은 산지오베제 특유의 신맛과 타닌을 중화시키기 위해 청포도를 섞어 당장 마시기 좋고 팔기 쉬운 와인을 만드는데 열을 올렸지만 비욘디 산티만은 달랐습니다. 오히려 산지오베제가 가진 타닌을 활용해 장기숙성시키면 훌륭한 와인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비욘디 산티는 산지오베제를 활용해 이보다 알이 작고 검푸른 색깔의 부르넬로 품종을 만들어 냅니다.

비욘디 산티의 리제르바 와인은 한 병에 150만원 안팎에 달하는 최고급 와인이다.
비욘디 산티의 리제르바 와인은 한 병에 150만원 안팎에 달하는 최고급 와인이다.
솔데라 와인
솔데라 와인
쟈코모 콘테르노 몬포르티노 와인
쟈코모 콘테르노 몬포르티노 와인
베가 시칠리아 우니꼬 와인
베가 시칠리아 우니꼬 와인
비욘디 산티 리제르바는 한 병에 150만원 정도에 팔립니다. 이 와인을 열면 검붉은 과일 향의 아로마를 기반으로 특유의 산도가 일품입니다. 뒤이어 들어오는 실크처럼 고운 질감의 타닌과 길게 이어지는 여운을 맛보면 왜 이 와인이 이탈리아 최고의 와인으로 불리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피에몬테의 바롤로 지역에서도 최고 와인이 나옵니다. 쟈코모 콘테르노(Giacomo Conterno)의 몬포르티노(Monfortino)입니다. 한 병에 150만원 안팎에 달하는 바롤로 와인의 최고봉입니다. 바롤로에는 기라성 같은 와인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쟈코모 콘테르노 몬포르티노 와인은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바롤로 와인은 네비올로 품종으로 만드는데 강력한 타닌과 싱그러운 향기, 특유의 신맛이 특징입니다. 와인을 따라보면 마치 피노 누아 와인처럼 엷은 색을 띠지만 입에 넣는 순간 입안의 수분을 모두 빼앗기는 느낌을 받습니다. 강력한 타닌이 정말로 입안을 버석거리게 만듭니다. 타닌이 이 정도로 강하니 최소 3년 이상 숙성시킨후 판매할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해놨습니다. 그러나 바롤로 와인이 제 맛을 내려면 족히 10년이 지나야 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강력한 맛의 바롤로 와인은 불과 한 세기 전인 1900년대 초까지만해도 정말 볼품없는 스위트 와인이었습니다. 네비올로는 껍질이 워낙 두꺼워 일정기간 숙성시켜도 타닌이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는 어려운 와인입니다. 더구나 만생종이어서 늦게 수확한 후 발효를 진행하다보니 날씨가 추워져 발효가 멈췄습니다. 거친 타닌은 그대로 살아있는데다 특유 신맛에 단맛까지 겹쳐진 정말 촌스럽기 그지없던 와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와이너리는 숙성을 길게 가져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곧바로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쟈코모 콘테르노는 달랐습니다. 이런 바롤로 와인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장기숙성을 통해 지금처럼 묵직하고 부드러운 타닌이 일품인 와인을 생산합니다. 숙성을 길게 가져간다는 것은 그만큼 자금 회수가 늦어지기 때문에 자칫 파산할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한 모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쟈코모는 네비올로의 거칠고 강한 타닌을 오래 숙성하면 묵직하고 부드러운 최고의 와인이 된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스페인에서도 최고의 명품 와인이 있습니다. 대표품종인 템프라니요(Tempranillo)로 빚는 '베가 시칠리아(Vega Sicilia)' 와인입니다. 이 중 베가 시칠리아 우니꼬는 '스페인의 라피트 로췰드'라 불립니다. 검은 과실향과 후추, 라벤더, 허브 향이 환상적이지만 타닌이 묵직하게 자리잡아 균형을 잡아준다고 합니다. 한 병에 100만원 안팎에 달합니다.
템프라니요 87%에 까베르네 쇼비뇽 13%을 섞어 만드는 이 와인은 단단한 와인으로도 유명합니다. 포도를 수확한지 10년이 지나야 출시됨에도 디캔팅을 하지 않고는 마실 수가 없을 정도로 자신을 잘 보여주지 않는 장기숙성형 와인이기도 합니다.


▶ 다음편은 '최고가 와인의 세계-미국 등'이 이어집니다.

kwkim@fnnews.com 김관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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