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물가 마이너스 진입, 디플레 경각심 높여야

정부는 가능성 낮다지만 함정에 빠지면 경제 거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대로 진입했다. 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8월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0.04% 하락했다. 비록 미세한 수준이지만 8월 소비자물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전년 대비 상승률 집계가 시작된 1966년 이후 처음이다. 이에 따라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디플레)에 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그러나 한은은 '디플레는 아니다'라는 진단을 내놓았다.

디플레란 수요부족으로 물가하락과 경기침체가 수년에 걸쳐 지속되는 현상을 말한다. 경제가 '물가 하락→고용 감소→마이너스 성장→총수요 위축'의 악순환을 끝없이 되풀이한다. 깊은 함정처럼 한번 빠지면 헤쳐 나오기가 어려운 특성을 지닌다. 디플레가 닥치면 그 나라 경제는 거덜난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디플레에는 보통 '공포'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8월 한 달 물가만을 근거로 디플레로 단정하는 것은 무리다. 한은이 발표한 소비자물가 내역을 보면 그렇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를 보인 것은 농축수산물(-7.3%)과 석유류(-6.6%)가 큰 폭으로 떨어진 탓이 크다. 농축수산물은 가뭄으로 지난해 가격이 폭등했고, 석유류는 경기활성화를 위한 유류세 한시인하로 올해 낮아졌다. 디플레는 수요위축과 지속성이라는 두 가지 요건이 충족될 때 나타난다. 이 점을 감안하면 8월의 마이너스 물가는 일시적 현상일 개연성이 커 보인다.

그러나 디플레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한은은 농축수산물과 석유류 가격하락이 없었다면 8월 물가가 1%대 중반을 유지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실현되지 않은 가정을 전제로 정책을 논하는 것이어서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정부와 한은은 53년 만에 마이너스 물가가 나타난 현실을 좀 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2~3개월 안에 플러스 물가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누구도 미래는 알 수 없다.

디플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면 사전 대비를 철저히 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주 기자간담회에서 "'R(경기침체)의 공포'가 부쩍 늘어나는 게 작금의 상황"이라고 했다.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에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일부 유로존 국가의 포퓰리즘 정책, 일부 신흥국 금융위기 등 악재가 속출하고 있다.
여기에 일본의 수출규제까지 겹쳐 경제상황이 심상치 않다. 경제가 더 이상 움츠러들지 않도록 총력전에 나서야 한다. 디플레 공포감을 불어넣을 이유는 없지만 안이한 대응을 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