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정부가 잘하는 일, 기업이 잘하는 일

우리나라의 산업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기적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업발전을 위한 토양이 전혀 갖춰지지 않았던 세계 최빈국 수준의 나라에서 경공업의 씨앗을 발아시키고, 경공업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겨우 확보해 가는 순간부터 중화학공업화에 착수해 이른바 산업구조 고도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런 산업화의 초기 발전 과정에서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이뤄낸 일들은 세계인들의 놀라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자본도 기술도 없고 심지어는 산업의 핵심자원으로 불리는 석유, 석탄, 철광석 등이 거의 생산되지 않는 가운데 모든 개발도상국이 부러워하는 산업발전을 이룩해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산업발전 과정이 특별했던 점이라면 아마도 '정부와 기업의 혼연일체의 협력'이었다고 할 것이다. 다른 개발도상국들도 비슷한 산업지원정책을 펼쳤고, 위에서 언급한 핵심자원들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출발한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정부와 기업의 협력, 즉 정부 지원이 제대로 역할을 하는지 기업들의 의견을 듣고, 산업활동에서 겪는 애로가 무엇인지 묻고 이를 해결해 주기 위한 새로운 지원정책을 내놓는 노력을 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이 우리나라가 다른 개발도상국과 다른 산업발전 성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산업발전 과정에서 기술개발의 중요성이 커지기 시작했을 때도 우리 정부는 기업들이 기술개발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기 위한 지원제도를 마련했다. 연구개발에 대한 금융·세제 지원, 첨단기술 분야 우수인력 활용을 위한 병역면제 제도 등이 그것이었다. 그 결과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투자는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게 됐다. 이런 노력들이 지금까지의 한국 산업발전을 이뤄낸 원동력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산업발전 전 과정에 걸쳐 우리 정부와 기업들의 역할을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의 축구팀에서 손발이 척척 맞는 공격수와 미드필더를 보는 것 같다고 하면 지나친 비유일까.

그런데 이런 협력관계가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그 효율을 잃어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언제부터인가 정부가 혁신이나 창조적 활동을 주도하려 하고, 기업은 정부 지원에 기대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축구팀에서 창조적 슈팅을 하는 공격수들을 뒷받침해야 할 미드필더들이 지나치게 전방에 나서서 자신들이 골을 넣으려 하는 순간부터 팀워크가 흐트러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술혁신이나 기업이 해야 할 창조적 비즈니스 활동에 정부가 지나치게 전면에 나서게 되면 기업들의 혁신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 정부는 지금까지 우리 산업발전 과정을 미리 내다보고 그 산업발전이 이뤄지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고 지원정책을 펼치는 데 어느 나라들보다 앞서는 모습을 보여왔다고 자부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정부 스스로가 최전방 공격수 역할까지 맡으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는 점은 우려스럽다.
녹색산업, 창조경제, 혁신성장으로 이어지는 구호가 정부 역할을 높이는 쪽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혁신이 되건, 새로운 비즈니스를 여는 혁신이 되건 혁신성장에서 최종 득점을 올리는 일은 기업들이 해야 한다. 그 기업들이 대기업이 되든지, 스타트업이 되든지 혹은 실리콘밸리에서처럼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협력으로 되든지 간에 정부는 이들이 혁신의 성과를 이룰 수 있도록 어떤 어시스트를 할 것인지에 집중해야 한다.

김도훈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