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공보규정 지켜도 피의사실공표죄 적용될수도"…경찰은 '답답'

이병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9.18 16:33

수정 2019.09.18 16:33

민갑룡 경찰청장이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수사기관의 피의사실공표 관행 방지를 위한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진=뉴스1
민갑룡 경찰청장이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수사기관의 피의사실공표 관행 방지를 위한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당정의 피의사실공표 훈령 개정 추진에 경찰 내부에서는 당혹스러움과 함께 비판 의견도 나오고 있다. 경찰은 당초 울산지역에서 촉발된 '피의사실공표죄' 논란에 대해 검찰과 법무부의 협의를 통한 논의를 추진해 왔다. 그러나 당정이 피의사실공표 제한과 관련한 훈령 마련에 속도를 내면서 경찰의 의견이 반영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警, 공보규정 지켜도 적용될수도"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수사기관의 피의사실공표 관행 방지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경찰 측 토론자로 나선 윤승영 경찰청 수사기획과장(총경)은 "경찰의 자체적인 공보 규칙이 있으나, 이를 지켰다고 해서 피의사실공표죄에 대한 위법성 조각사유로 인정될 수 있는지 자신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11년 간 기소된 사건이 한 건도 없을 정도로 사문화돼 있었던 피의사실공표죄의 모호성과 경찰의 공보 규정이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시한 것이다. 윤 과장은 "현장에서 언론 등과 큰 갈등이 초래되고 있어, 훈령이 아닌 입법 차원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초 피의사실공표 논란은 검·경 갈등의 부차적 소재로 여겨져 왔다. 해당 문제는 문제는 지난 5월 울산지검이 울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장과 팀장에 대해 피의사실공표 혐의를 적용해 입건하면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윤 과장은 "울산경찰청 경찰관들도 유지해 오던 사건 공보규칙을 준수했다"며 "이번 일 이후로 현장 수사관은 크게 위축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지난 7월 말에도 대검찰청 산하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해당 사건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기로 결론내렸다. 이에 이번 논란이 검·경 차원에서 이어질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으나, 조 장관과 관련한 공표 문제로 사안이 커지며 정권과 검찰 간 갈등으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경찰 내부에서는 갈등 주체가 바뀌면서 해당 논란에 대한 입장을 표시할 기회를 잃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 경찰은 울산지역에서 해당 논란이 불거진 이후 법무부와 검찰에 기준 마련 협의를 위한 공문을 수차례 보냈으나, 논의는 이뤄지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법무부가 추진하는 훈령 개정안에 경찰의 목소리가 들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다.

■"가이드라인 없으면 공보활동 위축"
논의의 한 축인 경찰은 답답함을 호소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울산경찰청 수사관들이 입건된 이래 (피의사실 공표 문제는) 경찰조직의 가장 큰 현안으로 올라온 실정"이라며 "(울산 사건) 이후 현장 수사관들이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여전히 피의사실공표 문제가 검찰이 더 심각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은 지난 6월 공문을 통해 '문제가 되는 피의사실공표는 인적사항을 밝히면서 사실상 유죄판결을 하는 행위'라며 우회적으로 검찰을 겨냥한 바 있다.

또 가이드라인이 정해지기 전까지는 공보 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경찰청 한 관계자는 "정책 등을 소개할 수 있는 경찰청 사정은 좀 낫다"며 "(사건 관련 자료를 주로 배포하는)지방청은 당분간 보도자료 하나 내놓지 못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토론회에서는 피의사실공표 문제에 대해 '상위 법령의 제·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수사기관의 훈령으로 운영되는 공보 규정보다는, 사실상 사문화된 관련법 정비를 통해 국민의 알 권리를 함께 충족시킬 수 있는 법률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피의자의 인권과 국민의 알 권리 사이의 관계를 고려해 형법의 피의사실공표죄 조항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지혁 법무부 형사기획과 검사도 "지난 5월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도 피의사실공표죄의 규범력을 강화 필요성을 지적했기 때문에, 입법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다양한 내용을 종합적으로 수렴해야 할 것이며, (법무부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bhoon@fnnews.com 이병훈 박지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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