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韓, 지식재산권 선진국 꼽히지만… 법 제도는 후진국 수준[IP 전문성, 기업 경쟁력의 밑거름]

이병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9.18 17:41

수정 2019.09.18 17:41

<下> 현실 반영못한 법 제도
한국 특허출원규모 세계 4위지만
변리사법은 제정 이래 개정 전무
주요국들 변리사 위상 높이지만
국내선 소송 대리조차 맡지 못해
#. 최근 무자격으로 상표 출원업무를 대리해 수 십억원의 범죄 수익을 거둬들인 30대 남성이 출소 직후 같은 수법으로 또 다시 범죄를 저질러 구속됐다. 그는 이미 지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A법무법인 김00 변호사(변리사)의 명의를 빌려 상표, 디자인 등 1만 2400여건의 불법 대리업무를 해 징역 2년, 추징금 26억 6700여만원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 김00 변호사는 변호사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았다.
韓, 지식재산권 선진국 꼽히지만… 법 제도는 후진국 수준[IP 전문성, 기업 경쟁력의 밑거름]

한국은 지식재산권(IP) 선진 5개국이라는 의미의 IP5에 꼽히는 국가지만 정작 IP 제도 실행의 핵심축인 변리사 등 관련 자격사 제도는 여전히 후진국 수준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변리사법의 경우 1961년 제정 이후 지금껏 단 한차례의 전부 개정도 없었다. IP는 세계적 수준이지만 관련 법 제도는 이를 따라 오지 못하고 있으며 IP5 국가 중 변리사가 소송대리를 못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IP 외형은 선진국, 실질은 후진국

한국의 특허출원 규모는 세계 4위다. 특히 국민총생산(GDP) 대비 특허출원은 세계 1위다. 2017년 기준으로 주요국의 특허 출원수를 비교하면 중국이 138만건으로 1위이고 미국(60만건), 일본(31만건), 한국(21만건) 순이다. 이 건수를 경제규모 대비로 표시하기 위해 국내총생산 10억달러당으로 하면 한국은 86.1건으로 세계 1위다. 인구 100명당 출원건수도 3189건으로 IP5 중 1위다.

한국의 IP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했지만 1960년대 만들어진 변리사법은 최근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으로 현재는 무자격 변리행위의 범위가 산업재산권 대리에 한정돼 있어 무자격자가 변리사의 명의를 대여해 자문이나 상담, 감정 등을 통해 실질적인 대리 업무를 수행하더라도 법적으로 처벌하기가 힘든 실정이다.

또 변리사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2011년 도입된 변리사 의무연수 제도나 변리사회 가입 의무, 그리고 변리사법 제8조에 명시된 변리사의 소송대리권 역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8월 말 기준 특허청에 등록한 변리사 수는 9697명이지만 휴업자가 5946명으로 61%가 넘는다. 휴업자 중 86%(5,141명)가 변호사 출신이다. 변호사(18%)나 세무사(4%) 등 타자격사단체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게다가 변리사법에 명시된 '변리사회 가입의무' 역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변리사법 제11조는 변리사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효과적인 관리·감독을 위해 변리사 등록자는 대한변리사회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하고 있다.

실제 변리사회 가입의무를 지키는 사람은 58%(5660명)에 불과하다. 특히 변리사시험 출신의 경우 96%가 변리사회 가입의무를 이행한 반면, 변호사 출신은 32%만이 변리사회 가입의무를 지키고 있다. 변리사회 관계자는 "최근에는 변호사들이 소송독점을 무기로 △변리사회 가입의무 △법무법인 명의의 상표출원대리 △변리사 소송대리권 등을 재판을 통해 변리사법·제도를 사실상 사문화시키는 활동들을 이어가고 있다" 며 "이는 국회에서 민의를 통해 제정된 변리사법의 입법 취지를 무시하고, 소송 독점을 무기로 자신들의 이익 수호에 앞장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IP 선진국 변리사제도 강화

중국, 일본, 유럽에서는 오히려 특허품질을 높이고 IP 보호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변리사의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시진핑 주석의 강력한 지식재산 경쟁력 강화 정책과 더불어 변리사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중화전리대리사협회의 인가를 받으면 변리사(전리대리사)가 소송대리를 할 수 있다. 또 올해 3월에는 변리사의 명칭을 '전리대리인'에서 '전리대리사'로 바꿔 중국 내 변리사의 위상을 강화했다.
중국에서 '사''는 변호사나 회계사, 교사 등을 일컫는 말로 사회적 영향력이 많은 직업에 쓰인다.

일본 역시 고이즈미 총리 시절부터 지식재산입국을 기치로 걸고 변리사의 업무영역을 명확화하고, 변리사에게 소송대리권(부기변리사제도)을 부여하는 등 변리사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통합특허법원 설립 논의와 함께 유럽변리사에게 소송대리권을 부여하기로 하는 등 변리사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pride@fnnews.com 이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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