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우리 세대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조화, 그리고 행복.. 연극 '게스트하우스'

한영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9.29 23:58

수정 2019.09.29 23:58

[연극 리뷰] 대학로서 초연되는 힐링코믹극 '게스트하우스' 
여자들의 이야기? 2030 '우리 세대'의 이야기
소극장 연극스럽지 않은.. 완성도 있는 다음 공연 기대돼
연극 '게스트하우스' 공연 장면
연극 '게스트하우스' 공연 장면

"행복은 그대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찾아온다(Happiness is when what you think, what you say, and what you do are in harmony)."

인도 건국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의 말이다. 간디에 따르면, 나의 생각과 언행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나는 행복해진다고 한다.

공연 이야기를 해보자. 공연을 보는 관객들은 언제 행복할까. 나오는 캐릭터들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아닐까.

지난 19일 서울 동숭동 드림시어터에서 초연을 시작한 연극 '게스트하우스(부제 : 네 여자 이야기)'를 보면서 자연스레 간디의 말이 떠올랐다. 극에서 다섯 명의 캐릭터는 각자 자신만의 행복을 좇아 달린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게스트하우스라는 공간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관객들에게 자신의 행복을 떠올리게 한다.

운명적인 만남을 꿈꾸는 낭만 여대생, 싱어송라이터의 꿈을 좇는 미혼모, 남자친구의 갑작스러운 프러포즈를 받은 여자친구, 잘못된 세상을 바로 잡고 싶은 열혈 기자가 제주도의 작은 게스트하우스에 모이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연극 '게스트하우스' 공연 장면
연극 '게스트하우스' 공연 장면

■여자들의 이야기? 2030 '우리 세대'의 이야기

일상에 지친 창우는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도에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다.
그러던 어느 날 폭우로 비행기들이 결항하고 사람들이 게스트하우스에 몰려든다. 그중 게스트하우스의 커뮤니티 공간에 우연히 모인 네 명의 여자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남성들에게 기울어진 연극장을 바로 세우기 위해, 국내에서도 다양한 여자 중심극이 시도되고 있다. '버자이너 모놀로그'처럼 직접적으로 여성을 강조한 공연부터, '달랑 한줄'처럼 다양한 연령대의 여자 캐릭터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연극까지 다양하다. 이제는 '여성 중심극'이라는 마케팅으로 여자 관객들을 유혹하는 것은 다소 진부해졌다.

연극 '게스트하우스'도 여성 중심극이다. 부제에 당당히 '네 여자 이야기'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 연극은 다른 극과 어떻게 다를까.

눈에 띄는 차별점은 '여성'을 강조하지 않은 것이다. 극에 나오는 네 명의 여자 캐릭터는 남자로 치환해도 되는 캐릭터들이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우리 주변의 캐릭터여서다.

물론 한국 사회에 살아가면서 겪는 여자들의 고충을 털어놓지만, 그들이 말하는 사랑, 가족, 결혼, 꿈, 직업의식 등은 남녀를 불문하고 2030세대를 관통하는 주제다. 그들이 말하는 이야기는 관객들과 의견은 다를지라도 고민점은 같다. "아직 아무것도 못 해본 제가 한심하고 용기도 없는 것 같아요"라는 은지의 대사에는, 여자가 아닌 우리나라의 취업준비생이 갖고 있는 고민과 아픔이 담겨있다.

'게스트하우스'가 다른 극과 차별화되는 점은 네 여자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이자 게스트하우스 주인인 '창우'의 존재다.

액자형 구성의 극에 나오는 화자는 대부분 관찰자나 사회자, 또는 캐릭터 간 연결고리 역할에 그치곤 한다. 그러나 창우는 기존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으며 극에 참여한다. "행복한 사람이 되라"는 말을 하며 극의 주제를 직접 던지기도 한다. 물론 극의 주제를 직접 던진 그가 연극 말미에 "이 이야기에는 어떤 교훈도, 주제도 없습니다"라고 마무리 짓는 부분은 다시 생각해도 오그라든다.

얼핏 보면 여자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극처럼 보이지만, 창우가 참여하고 조율하면서 극은 더욱 풍성해진다. 이 때문에 연극 '게스트하우스'는 여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2030세대의 이야기로 진화하게 된다.

연극 '게스트하우스' 공연 장면
연극 '게스트하우스' 공연 장면

■소극장 연극스럽지 않은.. 완성도 있는 다음 공연 기대돼

각론으로 들어가 보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무대였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저렴하게 볼 수 있는 공연에서 볼 수 있는 조악함이 보이지 않았다. 실제 게스트하우스 커뮤니티 공간을 옮겨놓은 듯 한 무대는, 관객들이 극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도와줬다.

또한 뮤지컬이나 음악극이 아님에도 완성도 있는 음악들이 적재적소에 나오면서, 자칫 단조로워 질 수 있는 극을 보다 풍성하게 만들었다. 다만 연주 과정에서 일부 배우들이 보이는 미숙함은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하기에 충분했다.

창작 코믹극을 표방하는 극이지만, 다른 창작 코믹극에서 나오는 유치한 말장난이나 개인기, 억지 호응 유도 등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배우들 간의 호흡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극이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관객들과 꾸준하게 템포를 조절하며 완급조절을 신경 쓴 듯 한 연출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초반과 중반에 캐릭터가 자신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설명할 때에는, 극이 루즈해지는 느낌도 받았다. 극이 지향하고 있는 현실성과 중간 중간 나오는 판타지성의 괴리도 다듬어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또한 극의 흐름을 방해하는 일부 배우들의 연기력은 신생 극단으로서의 한계로 보였다.

연극 '게스트하우스'는 지난 2017년 연극 에이에스센터를 쓴 진민범 연출의 두 번째 창작극으로, 이번에도 진 연출이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게 됐다.
젊은 연출자가 직접 쓰고 만든 극으로 보이지 않은 완성도였기에, 이들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연극 '게스트하우스' 무대
연극 '게스트하우스' 무대


fair@fnnews.com 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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