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합의된 사회적 기준’의 가치

박지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9.30 17:29

수정 2019.09.30 17:29

[기자수첩] ‘합의된 사회적 기준’의 가치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일은 일상다반사다. 서로의 요구가 다른 상황은 쉽사리 사회적 갈등으로 번질 우려가 높다. 사회적 갈등은 누구 하나의 승리로 끝이 나더라도 결국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정권을 잡게 되면 '소통과 통합'을 외치는 이유 중 하나다. 비교적 근래 가졌던 식사 자리에서 사회갈등을 줄이는 방법 중 하나를 어느 판사로부터 들었다.

그 판사는 사회구성원 간 합의된 기준이 많으면 많을수록 갈등은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합의된 기준은 단순한 통념일수도, 규칙 혹은 법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게 통념이든, 규칙이든, 법이든 사회적으로 합의를 이끌어내기까지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기준'은 참으로 값진 것이며, 그 기준을 훼손하는 것은 사회적 퇴행을 의미한다.

최근 취재 중 법조인 스스로 그 기준을 어길 수 있는 경계선에 선 사례를 확인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맡은 판사와 이 사건을 조사 중이었던 특별조사위원에 대한 취재였다. 같은 사건을 판결하고 조사하는 두 법조인이 부부란 사실을 알게 되고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수천명의 피해자를 양산한 이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명백한 참사이면서 비극이다. 누구의 잘못이었는지 진실을 밝혀 이 같은 비극이 우리 사회에서 또다시 일어나는 일을 막아야 함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공정한 잣대를 위해 만들어둔 혹은 합의해둔 일정한 기준을 외면할 경우 이는 결국 또 다른 의미의 사회적 퇴행을 자초하는 일이 될 것이다.

물론 이 사건을 맡은 재판부와 조사위원이 부부라는 이유만으로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을 것이란 건 아니다. 대부분 속사정을 들어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합의된 기준을 정해놓은 건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진보든 보수든, 성별, 연령, 출신 등에 상관없이 어떤 사람이라도 진실을 판명하기 위해 법정을 찾는 심정은 누구나 절박할 것이다.


더욱 성숙하고 신뢰 높은 사법부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어렵게 합의된 절차적 기준이 흐트러지는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본다.

pja@fnnews.com 박지애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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