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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미·일 무역협정 두려운 이유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0.01 17:52

수정 2019.10.01 17:52

[여의나루] 미·일 무역협정 두려운 이유
지난달 25일 미국과 일본 정상은 뉴욕에서 미·일 무역협정에 서명했다. 미국은 중국과 답답한 통상갈등을 지속하는 상황에서도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수준으로 일본 농산물시장을 개방시켰다. 일본은 미국의 대일 수입자동차 관세율을 낮추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회원국인 캐나다와 멕시코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하고 있는 일본은 미·일 무역협정 타결로 11월 말에 예고된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자동차 보복관세 부과 대상국에서 확실히 빠지게 됐다.

미·일 무역협정의 경제적 효과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일본이 마지막까지 노력했음에도 미국의 자동차 관세를 낮추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한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얻은 미국 시장에 대한 선점효과가 어느 정도 유지될 수 있다.
또한 미·일 무역협정은 개방도가 높은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므로 일본은 한·미 FTA와 같은 수준의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미·일 무역협정 타결이 두려운 이유가 한국이 일본, 독일 다음으로 미국에 자동차를 가장 많이 수출해 무역확장법 232조의 적용대상국이 될 우려 때문은 아니다. 올해 안에 타결이 난망하다는 방위비 분담금 문제, 미국이 90일의 시한을 설정한 개도국 지위 문제, 10월에 발표될 환율조작국 지정 우려 때문만도 아니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해 미국이 일본 편에 설 걱정 때문도 아닐뿐더러 최근 과거 어족자원 관리 문제로 미국으로부터 한·미 FTA 20장 9조 1항 위반에 대한 의심을 받는 상황 때문만도 아니다.

이런 현안들은 정부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에 정부의 기민하고 합리적인 대응으로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다.

그러나 미·일 무역협정이 두려운 이유는 바로 미·일 무역협정이 입이 아프도록 부르짖는 4차 산업혁명, 공유경제 등과 직접 관련되는 미래 무역이슈인 디지털무역에 대한 국제적 규범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은 미국·캐나다·멕시코 협정(USMCA), CPTPP 등을 통해 디지털무역의 기준을 만들어왔고 작년 10월에는 미국·일본·EU 무역장관들이 디지털무역에 대한 협력을 합의해 발표하기도 했다. 비록 농산물과 자동차에 가려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미·일 무역협정은 디지털무역의 핵심사항인 국경 간 정보이전 자유화, 컴퓨팅설비 현지화 요구 금지, 소스코드 공개 금지 등을 포괄하고 있다. 이런 이슈들은 디지털화 진전에 따라 궁극적으로는 민간과 공공을 망라하는 국가경제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한국도 세계무역기구(WTO)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차원에서 디지털무역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정부에서 수많은 세미나와 정책협의를 통해 디지털무역을 활발히 학습하고 논의해왔다. 그러나 관련된 정부 정책이 여태껏 무역협정에 관철되기는커녕 심지어 정책적 방향이 정립됐다는 이야기조차 들려오지 않는다.
이는 관련, 논의를 주도하는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하면 너무나 뒤처진 한심한 모습이다. 한국의 정책적 요구가 이미 자리 잡아가는 디지털 국제규범에 제대로 담기지 못한다면 국내에서 혁신성장을 위해 4차 산업혁명, 공유경제, 인공지능 등의 산업 지원을 위한 펀드를 조성하고 정부가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는 등의 노력이 어쩌면 한국 경제를 미국과 일본의 21세기형 가마우지로 만들어 버리는 데 악용될까 우려스럽기도 하다.
모쪼록 만시지탄이라는 말조차 사치스러운 상황이 초래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성한경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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