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디플레 징후 아니라는 정부, 믿을 수 있나

9월 물가 사상 첫 마이너스
뒷북보다 과잉대응 바람직

소비자물가가 사상 첫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9월 물가는 전년동기에 비해 0.4% 떨어졌다. 지난 1965년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래 처음이다. 8월 물가도 마이너스(-0.038%)를 보였지만 공식 통계상 0.0% 보합으로 잡혔다. 정부는 아직 디플레이션 우려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통계청은 9월 물가가 농산물·유가 하락과 올 가을학기부터 시작된 고교 무상교육 정책 시행 등의 영향을 받았다면서 "소비부진으로 인한 디플레이션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도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최근 몇 달간의 물가 흐름이 디플레이션 징후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우리도 정부의 판단이 맞길 바란다. 그만큼 디플레가 무섭기 때문이다. 디플레는 만성 고질병이다. 한번 수렁에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다. 이웃 일본이 반면교사다. 이른바 '잃어버린 20년'도 출발점은 디플레다. 아베 신조 총리 등이 뒤늦게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내리고 재정을 쏟아부었지만 효과는 별로다. 디플레 함정에서 허우적대는 동안 일본 경제는 중국에 밀려 세계 3위로 내려앉았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행여 디플레 징후를 놓치는 점은 없는지 두번, 세번 살펴야 한다. 특히 인구구조가 마음에 걸린다. 싫든 좋든 한국 경제는 일본 경제와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구도 일본이 걸어간 길을 쫓아가는 추세다. 세계 최저 출산율을 고려하면 오히려 일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인구가 줄 수 있다. 인구가 줄면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공급이 준다. 마이너스 물가는 이를 요약해서 보여주는 징표다.

사실 정부가 통계를 해석하는 능력도 썩 미덥지 못하다. 정부는 8월 고용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신규취업자 45만명 가운데 60세 이상이 39만명이라는 사실은 애써 외면한다. 가장 객관적으로 보아야 할 국가통계마저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꼴이다. 만약 같은 이유로, 곧 정권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디플레 징조를 외면한다면 안 될 말이다.

디플레는 사전대응이 긴요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뉴욕시립대)는 이달 초 서울에서 열린 한 컨퍼런스에서 "디플레이션 위험이 있을 때 신중한 기조는 위험을 더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디플레는 뒷북보다 차라리 과잉대응이 낫다. 정부의 한 박자 빠른 대응을 촉구한다.